“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올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
2010시즌 개막 전 그는 자신을 덮친 불운의 복선처럼 ‘아프지만 않았으면’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1피안타 무실점 선발승 이후 그는 팔꿈치를 부여잡고 마운드를 떠났고 이후 두 번의 팔꿈치 수술과 재활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FA가 아닌 순수 중간계투로 2억원까지 받았던 연봉도 반 이상 깎여나갔다.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우여곡절 속 그는 자신이 원했던 그 보직에 3년 4개월 여만에 섰다. 이재우(33, 두산 베어스)는 이미 3년 여 전 정해졌던 그 길에 어렵게 다시 섰다.
이재우는 13일 잠실 롯데전에 선발로 나서 5⅓이닝 동안 80개의 공을 던지며 2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2-0으로 앞선 6회초 1사 1,2루서 윤명준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윤명준이 정훈을 병살로 처리한 덕분에 이재우의 승계주자 실점은 없었고 시즌 5승 요건이 주어졌으나 8회 박준서의 동점 우월 투런으로 승리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호투를 펼치며 팀 승리 발판을 만든 것은 분명 큰 공이었다. 후반기 선발 전향 후 이재우의 성적은 4경기 2승무패 평균자책점 2.33이며 팀은 4경기서 모두 이겼다.

얼핏보면 최근 4경기 반짝 호투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면 이 네 경기는 뼈를 깎고 인대를 도려내는 고통 속에 받는 값진 보상이다. 휘문고를 졸업하며 1998년 2차 12라운드서 지명(전신 OB 시절)되었으나 탐라대 진학을 결정지은 이재우는 내야수로 뛰다가 발목 골절상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지명권을 지닌 두산의 문을 두드렸다. 대신 지명권이 상실되며 훈련보조 및 기록원으로 두산에 들어오는 조건이었다.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 빛을 발하게 마련. 당시 두산 배터리코치였던 김경문 현 NC 감독은 이재우의 비범함을 보고 훈련을 마치고 자신이 손수 이재우의 공을 받으며 “너 괜찮다”라는 말로 기를 북돋워주었다. 2001년 정식 계약까지 성공한 이재우는 2004시즌 6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해는 바로 김경문 감독이 처음 두산 지휘봉을 잡은 해다.
“내게는 감사한 분이셨다. 김경문 감독께서 내가 훈련보조로 일하던 시절 그렇게 공을 받아주시면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2005년에는. 정말 그 때는 아파도 꾹 참고 던졌다”. 2005시즌 이재우는 76경기 99⅔이닝을 연투로 소화하며 7승5패1세이브28홀드(1위) 평균자책점 1.72를 기록, 생애 처음 타이틀홀더가 되었다.
2005시즌 후 공익근무 입대한 뒤 2008시즌 합류한 이재우는 그해 중간계투 11승을 올리며 활약했고 연봉 2억원 계약을 맺으며 2009시즌 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2007년 말에는 흥국생명 미녀 세터였던 이영주씨와 결혼하며 가정을 꾸렸다. 2009시즌에는 아르바이트 선발-계투를 오가며 5승12홀드를 올렸다. 여기까지 이재우의 삶은 평탄했다. 숨겼던 팔꿈치 통증이 던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 전까지 말이다.
2010시즌을 앞두고 4선발로 낙점되었던 이재우는 자주 “아프지만 않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을 뱉었다. 그해 4월4일 문학 SK전서 6이닝 1피안타 무실점 선발승을 거두고 나서도 “아프지만 않다면 최고의 해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다음 등판이던 4월10일 LG전서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고 이재우는 자취를 감췄다. 선발로 성공하겠다던 첫 번째 꿈이 깨진, 지금으로부터 1222일 전의 경기였다.
결국 그해 8월 이재우는 미국 LA로 건너가 첫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2011년 전지훈련까지 함께 동행해 훈련하던 이재우는 그해 6월 극심한 통증을 또다시 느꼈고 인대가 다시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첫 수술을 집도했던 조브 클리닉 측은 ‘재수술 전례가 없어 곤란하다’라며 이재우에게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길 권했고 결국 2011년 7월 서울 김진섭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두 번 받고 재활 기간이 길어지니 그저 잠실 마운드에만 올라도 그냥 기쁠 것 같다. 딸아이에게 아빠가 야구 선수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아프지 않고 던질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막판 3경기서 무실점으로 감을 잡아간 이재우는 올 시즌 계투로 나서다 5월7일 문학 SK전에 나갔다. 그러나 이날 이재우는 1이닝 40구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공을 30개 이상 던지는 순간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라. 마치 처음 다쳤을 때와 느낌이 비슷해서 너무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다행히 이재우의 진단은 팔꿈치 단순 염증으로 밝혀졌다. 이후 슬럼프를 겪던 이재우는 2군에 내려가 불펜 투구 100~150구로 한계 투구수와 지구력을 높여 선발로 나설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금 받은 결과는 자신의 후반기 선발 등판 시 팀의 무패 행진이다. 이닝 소화는 아쉽지만 그래도 위기 상황을 잘 넘기고 있는 이재우다.
“내가 못 이긴 것은 크게 아쉽지 않다. 우리 팀이 이겼으니까. 솔직히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를 때는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 공이 제구가 잘 되지 않았고. 6회까지 내 힘으로 막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잠실 마운드에 다시 서 보고 싶을 뿐이라던 이재우는 어느새 두산 투수진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재기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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