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깊고 집요한 늪이 또 있을까. 절권도 고수에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발사하는 왕년 서울예대 정우성도 수다 앞에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망가졌다. 한창 예능에 맛을 들인 배우 장혁은 시종일관 진지한 수다 모드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혁은 지난 13일 오후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이하 '화신')에 3개월 만에 이례적으로 재출연해 새로 찍은 영화 ‘감기’ 이야기는 얘기는 꺼내놓지도 못한 채 30대 수다쟁이 아줌마 배우 홍은희, 박은혜 틈에서 감춰왔던 수다 실력을 뽐냈다.
장혁 표 수다의 진수(?)는 외모만큼이나 진중하고 끝이 없다는 점이었다. 함께 출연한 박은혜는 과거 장혁과 함께 영화를 찍을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박은혜의 말에 따르면 친한 사이였던 장혁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글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박은혜는 “뭐냐”라고 물었고, 이후 장혁은 수필 책 한 권을 끝없이 읽었고, 박은혜는 여러 번 끊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이야기를 할 때는 일단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놓고 시작한다는 장혁에 대한 고발담은 이어졌다. MC들은 “배우 이상엽도 군대에 가기 전에 밤에 장혁이 새벽까지 조언을 해줬다더라. 오후 8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새벽 3시까지 다음 날 군대 가는 이상엽을 붙잡고 있었으니 그걸 말린 매니저가 아니었으면 이상엽은 밤새고 입대할 뻔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장혁은 그런 자신의 수다 본능에 대해 “수다를 좋아한다. 사람 만나서 말하는 것이 좋다. 100 명과 얘기해도 채워지지 않는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줬다.
이어 장혁은 MC 봉태규의 언급으로 실제 너무 끈질긴 수다로 인해 연기 스승이 혈변(?)을 보기까지 했던 일화를 전했다. 장혁의 연극배우였던 그의 사극 연기 선생님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장혁의 이야기를 들어줘야했다. 장혁은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이기적이었다. 일주일 동안 잠을 거의 못 자셨더라. (하혈을 하셨다는 것은) 쓰러진 게 아니라 집에서 변을 보셨는데 (혈변을 보셨다)”라고 말했다. 당시 장혁의 연기를 도왔던 연극배우 안혁모는 연극에 출연 중이었고, 아기가 태어나 육아를 돕고 있던 때였다.
그런 장혁의 수다 본능이 꺾였던 때가 있었다. 노산을 걱정해 미리 계획하에 함께 아기를 먼저 갖기도 했다는, 부인의 출산일 당시였다. 부인이 아이를 낳는 다급한 순간 배우 김수로에게 전화가 왔고, 작품에 대해 한참 고민을 늘어놓았다. 장혁은 "너무 진지한 고민이라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애가 나와 있었다,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하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또한 "(김수로는) 그 상황에선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려줬다"며 "장혁씨가 말을 계속 하셨을 것"이라는 박은혜의 추측에는 "아니다. 이번엔 정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저도 사람인지라"라고 말해 안쓰러움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냈다.
이후 장혁은 박은혜, 김희선, 홍은희 등과 함께 실제 육아에 대한 수다에 빠져들었다. 무슨 얘기를 해도 결국에는 육아 이야기로 귀결되는 흐름에 그는 "듣다 보니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육아가 중요한 것 같다"라며 영화 홍보를 하러 나온 자신의 본분을 잊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벗고 수다왕임을 입증한 장혁의 새로운 면모가 예능인으로서의 활약에 더 큰 기대감을 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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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