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그 때가 훨씬 낫지요. 그래도 100% 이긴다는 생각 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 마무리를 맡았을 때도 사실 계획도와는 다른 시나리오였다. 우연하게 뒷문을 맡았던 그는 첫 4시즌 동안 111세이브를 올리며 수준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그리고 올 시즌 계획에서 벗어난 시나리오를 그가 온전하게 만들고 있다. '메시아‘ 정재훈(33, 두산 베어스)은 그래서 팀의 보물 투수다.
정재훈은 지난 13일 잠실 롯데전서 3-2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라 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한 점 차 승리를 지켰다. 올 시즌 자신의 8번째 세이브. 2005시즌 신인 서동환의 마무리 보직 적응 실패를 메우며 처음 뒷문지기로 일을 시작한 정재훈은 그해 30세이브를 올리며 구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6시즌에도 38세이브(2위)를 올리며 마무리로 활약한 정재훈은 2007시즌 25세이브(5위)에 이어 2008시즌 18세이브(5위)를 올렸다. 그러나 2008시즌을 치르던 도중 늘어난 승계주자 실점과 블론세이브로 인해 큰 부담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 후반기부터는 선발 및 롱릴리프로 뛰었다.
2009년 2선발로 출발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중간계투로 보직 이동했던 정재훈은 2010년 23홀드(1위)를 따내며 다시 승리 계투로 우뚝 섰다. 그러나 2011시즌 8세이브9홀드를 기록하며 어깨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시즌을 접었다. 4년 최대 28억원의 FA 계약을 맺었으나 지난해 어깨 부상 여파로 인해 4경기 출장에 그쳤던 정재훈이다.
부상을 떨치고 돌아온 정재훈은 왜 프랜차이즈 계투가 되었는지 증명하고 있다. 올 시즌 정재훈의 성적은 42경기 3승8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3.00. 전반기 32경기 3승2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한 그는 후반기 홍상삼을 대신해 붙박이 마무리로 나서며 10경기 6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으로 호투 중이다. 직구 평균구속은 130km대 중후반 가량이지만 릴리스포인트까지 공에 힘을 싣는 요령이 뛰어난 데다 포크볼 구사력도 수준급인 만큼 전성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는 정재훈이다.
경기 후 정재훈은 “팀에 내가 마무리를 맡겠다고 직접 요청한 것은 아니다. 코칭스태프들께서 회의를 하시고나서 정명원 코치께서 내게 마무리를 부탁하셨다”라고 밝혔다. 사실 2008시즌 중 보직 변경한 뒤 마무리를 다시 맡는 데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정재훈이지만 팀의 바람에 따라 자신의 경험을 위급한 순간 발휘하고 있다. 정재훈이 뒷문을 맡으며 두산도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즌 전부터 내 자리로 계획되었던 보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봤던 길이잖아요. 마무리를 처음 맡는 입장이었다면 두리번거리면서 실수도 했을 텐데 그래도 가본 길을 한 번 더 가는 것일 뿐이니까. 공은 예전이 훨씬 낫지요. 그래도 그때처럼 100% 이긴다는 생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마무리로 나서며 얻은 장점도 있다. 중간계투로 나섰다면 때에 따라 1~2점 차 박빙 추격전 속에서 추격조로 등판할 가능성도 있어 연투에 대한 과부하 가능성도 있으나 마무리로 나서며 그에 대한 부담은 사라졌다. 어깨 부상 전력의 투수인 만큼 사후 관리에 있어서도 수월할 수 있다.
“상대가 느끼는 구위는 예전만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마무리로 나서면서 부상 후 팔관리가 좀 더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연투 부담은 확실히 없습니다”. 가봤던 길을 다시 걷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정재훈은 한결 긍정적인 자세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