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재의 하이브리드 앵글] 홍명보호의 계속된 실험, 시간 두고 기다리자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3.08.15 08: 30

홍명보호의 실험은 페루전서도 계속 됐다. 명과 암을 모두 봤다.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할 때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FIFA 랭킹 56위)은 지난 14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미의 복병 페루(22위)와 평가전서 결정력 부족을 드러내며 0-0으로 비겼다.
실험의 장이었다. 홍 감독이 평가전을 제대로 활용한 느낌이다. 실험에 주안을 둔 깜짝 카드가 여럿 있었다. 먼저 붙박이 수문장 정성룡이 빼고 김승규를 풀타임 출전시켰다.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로 주전 골키퍼 장갑을 내주지 않았던 정성룡이었지만 이름 값은 중요치 않았다. 홍 감독은 안성맞춤의 스파링 파트너 페루를 맞아 올 시즌 K리그에서 선방쇼를 펼치고 있는 김승규를 내보냈다.

포백 라인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동아시안컵서 좌우측 풀백으로 활약했던 김진수와 김창수를 대신해 김민우와 이용을 선발 출격시켰다. 김진수와 김창수는 선발이 유력했지만 홍 감독은 안정을 택하는 대신 또 다른 실험을 선택했다.
관심을 모은 공격진은 소폭 변화가 있었다. 동아시안컵서 중용을 받았던 김동섭이 전반, 새로 뽑힌 조동건이 후반 최전방 공격수로 낙점을 받았다. 그 뒤로 홍명보호의 황태자로 떠오른 윤일록과 오랜만에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이근호와 조찬호가 지원사격을 했다. 동아시안컵 3경기 1골에 그쳤던 공격진에 일정 부분 메스를 들이댄 부분이라 이목이 집중됐다.
지독한 골가뭄에 결국 단비는 내리지 않았다. 실험의 과정은 좋았으나 결과는 답답했다. 15개의 슈팅을 때리고도 골을 넣지 못했다. 동아시안컵을 포함해 4경기 1골의 빈공이다. 서 너 차례 완벽한 찬스는 무위에 그쳤다. 결정력, 분명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암이 있으면 명이 있는 법. 윤일록은 동아시안컵에 이어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했다. 결정력에 물음표를 남겼으나 분주한 움직임에 이은 찬스 메이킹으로 페루의 골문을 위협했다. 이근호와 조찬호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상대 수비진을 쉴새없이 교란했다. 다만 둘 모두 결정적인 찬스를 두 차례 정도 놓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쉬울 법 하나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15개의 슈팅은 나쁘지 않았다. 안방이었다고는 해도 상대는 해외파가 대거 합류한 최정예 멤버의 페루였다. 한국은 중심을 잡아주던 캡틴 하대성이 후반 7분 불의의 부상(발등 염좌)으로 나간 뒤 선수 교체를 단행, 달아올랐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그 전까지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매끄러운 게 많았다. 홍명보호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축구다.
나무보단 숲을 봐야 한다. 지금은 새 사령탑이 지휘봉을 잡고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시기다. 홍 감독은 눈앞의 결과에 급급하기 보단 멀리 바라보고 있다. 페루전도 유럽파를 부르지 않았다. 이듬해 열릴 2014 브라질월드컵을 겨냥한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럽파의 실험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직접적인 성과도 있었다. 조찬호, 김승규 등의 가능성 발견과 함께 윤일록, 하대성, 이명주 등의 능력도 재확인했다. K리그의 활약이 A대표팀으로 이어졌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선의의 경쟁도 불러 일으켰다. 유럽파는 없었지만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경쟁이 치열했다. 누가 홍心을 잡았을 지 안갯속이다. 어느 하나 만만한, 주전이 보장된 자리가 없다.
페루전을 끝으로 큰 그림의 실험은 매조지됐다. 이제 오는 9월 A매치를 통해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간다. 비유럽파의 경쟁력은 확인했다. 이제 유럽파를 불러 들여 결정력을 높이고 세밀함을 가다듬으면 된다. 홍 감독은 16일 독일로 날아가 손흥민 구자철 박주호의 상태를 점검한다. 9월에는 영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동원 기성용 김보경 이청용 윤석영 등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급할 것 없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진짜 홍명보호를 볼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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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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