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화 김응룡 감독은 지난 2일 1군 엔트리를 조정하며 오른손 외야수 이양기(32)를 불러들였다. 우타자 중에서 마땅한 대타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일 아침 서산에서 갑작스럽게 1군 콜업 통보 받은 이양기는 그날 부랴부랴 움직여 원정지인 마산에 합류했다. 다시 1군으로 돌아온 그 순간, 그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양기는 1군 복귀 후 7경기에서 30타수 14안타 타율 4할6푼7리 7타점으로 뜨거운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당초 대타감으로 1군의 부름을 받은 그였지만 지난 8일 대구 삼성전부터 6경기 연속 선발출장하고 있다. 외야수와 1루수를 넘나들며 꾸준히 선발 라인업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양기는 지난 5월 중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후 한동안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5월말을 끝으로 2군 퓨처스리그에서도 뛰지 못했다. 이양기는 "그때 3군으로 내려갔다. 출전 기회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당시 한화는 팀 리빌딩을 위해 2군에서부터 젊은 선수들을 키우고 있었다. 베테랑 이양기의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양기는 "한 달 반 정도 3군에 있었다. 그 사이 팀을 떠난 선수들도 몇명 있었다. 난 운 좋게도 다시 1군 기회를 잡았다"며 "1군에 올라오며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고, 젊은 선수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한화는 이미 적잖은 선수들을 정리해고, 일찍이 내년 시즌을 위한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다.
다행히 이양기는 대타감이 필요하다는 김응룡 감독 요청에 따라 극적으로 기회를 잡았다. 7월말부터 2군에서 3경기를 치른 후 급하게 1군에 올라왔지만, 마지막이란 각오로 돌아온 그에게는 거칠 게 없었다. 7일 청주 SK전부터 8~9일 대구 삼성전 3경기 동안 10안타를 몰아쳤다. 9일 삼성전에서는 첫 5안타 5타점으러 폭발했다.
11일 목동 넥센전에서도 3안타를 터뜨리며 계속해서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변화도 있었다. 이양기는 "장종훈 타격코치님 주문대로 밀어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장타에 대한 욕심이 있어 잡아당기는 게 많았다. 이제는 배트 무게도 줄여서 우측으로 가볍게 밀어치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데 경기에서도 잘 되고 있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올해 17경기에서 50타수 19안타 타율 3할8푼 10타점. 누적 기록 자체가 많지 않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성적이다. 이양기는 "성적을 떠나 마지막이란 각오를 잊지 않고 초심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매경기, 매순간, 마지막이란 각오로 매달리고 있는 이양기의 '벼랑끝 타격쇼'가 움츠러든 한화를 일깨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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