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율(不文律)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알게 모르게 납득하면서 지키고 있는 규칙이라는 뜻이다. 공문화된 규칙이 아니더라도, 필요에 의해 서로 받아들이고 지켜나가는 관습적 규율이 곧 불문율이다.
서포터 사이에도 불문율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원정팀의 장외섭팅(서포팅)이다. 원정팀의 장외서포팅은 홈팬들의 감정을 자극해 충돌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암묵적인 금지대상으로 여겨져왔다.
또 하나의 불문율이 바로 서포터석이다. 일반적으로 홈팀 서포터는 N석에, 원정팀 서포터는 S석에 앉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다. 서포터들은 90분 내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서서 노래하고 박수를 치고 때로는 험상궂은 언사를 나누기도 한다. 같은 감정과 목소리가 흐르는 서포터석이 동지의식을 공유하는 하나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이번 인천 서포터의 서울 팬 폭행 역시 이러한 서포터간 불문율에서 시작된 부분이 있다. '경인더비'로 주목받은 지난 10일 인천과 서울의 경기서 벌어진 동시다발적인 몇 개의 폭행사건은 서포터 사이의 불문율이 어떻게 폭력으로 진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재 사실로 파악된 인천 팬들의 폭력행위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경기 전 관람석 입구 부근에서 서울팬 정모 씨에게 폭력을 가한 것과 경기를 전후해 불특정 서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향해 욕설과 위협을 가한 행위다.
경기 전 인천 팬 5명은 정 씨가 경기 관람석 입구 부근에서 서울 유니폼을 입고 지나가자 둘러싸고 욕설과 함께 맥주를 뿌렸다. 목덜미를 잡아채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등 위협행동도 동반했다. 정 씨가 서울 유니폼을 입고 인천 서포터석인 N석 부근을 돌아다닌 것이 도발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FC서울 지지자연대인 수호신은 이 내용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14일 프로축구연맹을 방문, 법률대리인이 작성한 질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호신 측은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도 증거로 함께 제출했으며, 질의서를 통해 인천 서포터 미추홀 보이즈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서울에 대한 안티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집단폭력행위의 근절을 위해 재발방지와 사과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사건을 두고 SNS 상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인천 서포터들은 "서울 유니폼을 입은 원정팬들이 서포터석에 앉아있는 장면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며 서울 서포터 쪽이 먼저 불문율을 어겼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서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서포터석 퇴장을 요구하는 인천 서포터에게 먼저 언성을 높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제는 서포터간의 불문율을 어디까지 확대적용해야하는 것인가다. 일례로 '서포터석'이 어딘지 정확히 모르는 초보 축구팬이 서울 유니폼을 입고 N석에 앉았을 때도 불문율은 적용되어야 할까. 축구장은 서포터만의 공간이 아니다. 서포터가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 자신의 팀에 대해 쏟아붓는 애정은 충분히 존중받아야한다. 그러나 그 애정과 사랑이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으로 발현해서는 안된다. 서포터가 권위의 상징이 되고,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배타적인 불문율을 계속 이어가서는 안된다.
서포터의 멋진 응원은 직관의 묘미다. 소리 높여 응원하는 서포터의 모습은 일반 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하지만 그 볼 거리 안에 폭력은 해당되지 않는다. '내 팀'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불문율에 대한 집착이 폭력사태까지 이어진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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