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엑스트라’ 최재훈, 명품 조연 되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8.16 06: 04

하루 전 그는 상대 계투 투입을 한 포인트 먼저 끌어오기 위한 ‘미끼 대타’가 되어 타석도 못 서보고 곧바로 교체되었다. 팀 전략 상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선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노릇. 그러나 다음날 그는 새 외국인 투수의 첫 무실점 승리를 이끌면서 경기를 지배한 감초가 되었다. 두산 베어스 제2의 포수 최재훈(24)의 광복절 수훈은 분명 대단히 뛰어났다.
최재훈은 15일 광주 KIA전에 8번 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해 3타수 1타수 무안타 2희생타를 기록한 뒤 주전 포수인 선배 양의지에게 바통을 넘겼다. 안타는 기록하지 못했으나 그가 5회와 7회 기록한 희생번트는 모두 쐐기점으로 이어질 수 있던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타격에서의 숨은 공로는 둘째치고 무엇보다 데릭 핸킨스의 7이닝 무실점 승리를 도왔다는 것이 더욱 큰 공이었다.
사실 최재훈은 지난 14일 잠실 롯데전에서 타석, 수비위치에도 서 보지 못하고 교체되어 1경기 출장 기록을 남겼다. 2-4로 뒤지고 있던 7회말 1사 2,3루 좌완 이명우가 마운드에 있을 때 두산은 좌타자 정수빈 대신 최재훈을 대타로 처음 내세웠다. 그러자 롯데는 언더핸드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렸고 곧바로 두산은 최재훈 대신 13일 정대현을 상대로 역전승 발판 2루타를 때려냈던 오재일을 대타로 내세웠다.

이는 상대 계투 카드를 좀 더 일찍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덫이었다. 최재훈이 전략 상 교체되었으나 선수 본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을 노릇. 팀은 그 전략 속 7-6 역전승을 거뒀으나 자칫 최재훈에게 ‘타격이 안 되는 선수’라는 선입견이 붙을 수도 있었다. 사실 최재훈은 경찰청 시절이던 2011년 79타점으로 타점왕이 된 바 있다.
좋은 포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공수 양면에서 양의지에 비해 모자람이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투수와의 호흡 등은 상대적인 데다 그날그날의 궁합 등이 있는 만큼 최재훈은 15일 핸킨스와 배터리를 이뤘다. 결과는 대박. 개릿 올슨을 대신해 새 외국인 투수로 한국 땅을 밟았으나 지난 3경기서 아쉬움을 남겼던 핸킨스는 이날 7이닝 5피안타 3탈삼진 3사사구 무실점으로 기교투를 선보였다.
물론 KIA 타선이 최근 침체기에 있고 핸킨스도 깔끔하게 무실점투를 펼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 핸킨스가 투심-싱킹 패스트볼 등 패스트볼 변종 구종으로 땅볼 유도형 피칭을 펼쳤다면 이번에는 커브, 체인지업 등 완급조절형 구종을 구사했다. 최재훈이 블로킹을 감수하고 떨어지는 공을 주문하기도 했다. 양의지가 믿음직하게 투수를 리드하는 스타일이라면 최재훈은 곰살스럽게 투수를 다독이는 스타일. 서로 장점도 뚜렷한 만큼 두산이 팀을 꾸리는 데 있어 좋은 조합의 포수들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무실점을 이어가면서도 한동안 굳은 인상을 풀지 못하던 핸킨스는 7회말 공수교대와 함께 최재훈의 엉덩이를 툭 치며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김진욱 감독도 경기 후 “최재훈이 영리한 리드를 펼쳤다”라며 숨은 내조의 힘을 칭찬했다.
2008년 처음 신고선수로 들어왔을 때부터 최재훈은 야구에 대한 욕심이 큰 포수였다. 백업 포수가 강해야 팀이 강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이토 쓰토무 지바 롯데 감독이 지난해 두산 수석코치를 맡았을 때 최재훈을 들볶듯이 훈련시키던 과정. 최재훈은 그 강훈련을 긍정적인 자세로 견뎌냈고 지금도 경기 전 강훈련을 소화하는 포수다. 강한 백업 포수 최재훈은 분명 두산이 가진 최고의 히든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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