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야수의 실책이었으나 이후 제구난으로 인해 두 명의 주자를 스스로 쌓고 만루 위기를 맞았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뻔 했던 위기에서 돌아 들어가는 지혜를 보여주며 위기를 넘겼다. 두산 베어스 우완 에이스 노경은(29)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노경은은 17일 잠실 SK전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1피안타(탈삼진 7개, 사사구 4개)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7승(7패)째를 거뒀다. 안타를 1개 내준 대신 4개의 사사구는 옥의 티였고 그 중 두 개가 위기 상황에서 연달아 나왔으나 노경은은 스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7회초 1사 후 노경은은 박정권의 2루 땅볼 때 2루수 김재호의 실책으로 인해 누상에 주자를 출루시켰다. 힘이 떨어져가던 순간 나온 실책. 노경은에게 좋을 것이 없었고 후속 두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하며 노경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김강민에게 풀카운트 끝 볼넷을 내주며 1사 1,2루로 몰린 노경은은 이재원마저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며 만루 위기에 놓였다. 야수의 실책과 투수의 동요는 상대팀에게 분위기를 내주며 결국 역전을 내주는 스토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만큼 노경은에게는 7회초 1사 만루가 이날 경기 최대 위기였다.
그 위기를 넘긴 것은 바로 투수 노경은 자신이었다. 한동민을 상대로 볼카운트 2-2까지 몰고 간 노경은은 5구 째 결정구 스플리터(137km)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었다. 여기에 베테랑 박진만을 상대로는 4구 째 커브(119km)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고 강렬하게 포효했다. 150km을 상회하는 포심을 우격다짐으로 던지기보다 오히려 보여주는 공 식으로 변화구를 초구부터 던진 뒤 결정구까지 커브로 구사하는 담력과 변화구 구사력이 돋보였다.
올 시즌 노경은은 국내 투수 최다이닝(135⅔이닝), 최다 퀄리티스타트(15회)를 기록 중이지만 다소 승운이 없었다. 타선과 수비 지원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경은이 위기 상황에서 포심이나 투심, 스플리터를 고집했다가 상대의 방망이를 넘지 못하며 결정적인 실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힘을 앞세운 구위와 변화구가 통했던 만큼 전략을 고수했으나 이제는 경계대상이 된 만큼 지난해만큼의 위력은 아니었다. 이른바 과도기다.
그런데 이제는 위기에서 힘이 아닌 변화구 구사력으로 타자를 사로잡는 기교투를 선보였다. 이날 116개의 공을 던진 노경은이 구사한 커브는 단 4개. 그런데 그 4개 중 두 개가 2사 만루서 박진만을 상대로 나왔고 헛스윙 삼진을 이끈 결정구가 바로 119km짜리 바깥쪽 커브였다. ‘포심 아니면 투심’이 나오던 이전의 투구패턴을 탈피한 노경은의 꾀와 구사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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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