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정우오빠 '하리우드' 찍고 가실게요[인터뷰]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3.08.19 07: 16

하정우를 만나던 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삼청동 한구석에 자리한 인터뷰 장소까지 걸어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좀처럼 땀이 나지 않는 체질인데도 이마와 등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줄기차게 영화만 찍는 배우 하정우와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대했지만 지난 2007년 드라마 '히트' 이후엔 몇 년 간 TV 드라마에서는 만날 수 없던 배우, 그와의 인터뷰는 본래 방송 담당이었던 기자가 영화 파트로 옮겨오고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 개봉에서야 이루어졌다. 워낙 인기 인터뷰이인 까닭에 일정 잡는 자체가 쉽지 않았고 당일엔 올 여름 최고 폭염까지 찾아왔다. 여러모로 만나기 녹록지 않은 하정우다.
삼청동 한 카페의 2층에 자리하고 있던 하정우. 하지만 그도 기자 이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씩씩거리며 올라간 그 곳, 하정우는 벌써 며칠째 수십 개의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는 작품으로만 보여주면 된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는 게으른(?) 배우들 혹은 사생활 질문이 싫다고 인터뷰를 꺼리는 까칠한 배우들이 자리하는 충무로에서 하정우만큼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인터뷰를 소화하는 인사도 드물다. 그는 매 작품 주연 배우로서 누구보다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홍보 활동에 임하는 스타다. 냉랭하다는 기자들조차 흡인하는 인간미, 당연히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는 그 진심. 무더운 날 고된 채로 만나 나눈 그와의 수다는 하정우의 청량한 앞날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 인터뷰에 열성적이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많은 언론사를 만나는 데 할애하기로 유명하다. 힘들지 않나
배우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고 제작보고회를 하고 시사회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무대 인사도 돌고... 모든 것이 한 작품을 끝내는 과정이다. 달랑 연기만 한다고 작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직접 홍보하는 것 또한 내 일이 아닐까.
- 이런 적극 홍보 덕택인가. '더 테러 라이브' 성적이 좋다. 대작 '설국열차'와 맞붙고도 이 정도 성적이라니, 소감이 어떤가
같은 시기에 개봉한 두 영화가 같이 잘 되고 있어서 좋다. 내가 출연했거나 안 했거나 우리 한국 영화가 사랑을 받는다는 건 배우로서 정말 기쁜 일이다. 사실 '설국열차'와 라이벌인 것처럼 무드가 만들어져 있지만 참 쑥스럽다. 대작을 상대로 '더 테러 라이브'가 성적이 좋다는 평가들이 많은데, 김병우 감독을 비롯해 같이 고생한 사람들 모두가 보람된 일이다.
- 경쟁작 '설국열차'를 봤나
아직 못 봤다. 안 그래도 오늘 내일 중엔 볼 생각이다. 어떤 작품일지 솔직히 많이 궁금하다. 기자분들이 '설국열차'에 대해서 물을 줄 알고 일부러 안 봤다. 하하.
아직 작품은 못 봤지만 얼마 전에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 등 '설국열차' 출연진이 내한해서 봉준호 감독, 송강호 형, 고아성 양 등과 함께 레드카펫 행사를 하는 장면을 매체로 접하고 정말 뿌듯했다. 가슴에서 벅찬 뭔가가 올라온다. 경쟁작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은 우리 식구들의 얘기다. 함께 일하고 같이 잘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벅찬 순간을 만나는 광경이 기뻤다.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고 그건 곧 내가 일하는 일터와 사람들의 얘기다.
 
- 그럼 '더 테러 라이브' 얘기를 해보자. 처음으로 단독 주연이다. 전개의 80% 쯤은 혼자 끌고 나가는 시나리오다. 단독 주연이라니, 연기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선택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하하. 자신감...이라고 말하기는 뭣하다. 지금이 아니라 5년 전이라도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봤다면 했을 거 같다. 자신감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자신감은 늘 가지려고 노력은 한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데 이게 자신감일 수도 있겠다. 여튼 단독 주연으로 뭔가를 뽐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작품을 할 땐 그게 멀티 캐스팅이든 단독 주연이든 부담스럽기는 늘 마찬가지 같다.
- 자, 이번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으면서 어떤 부담이 있었나
아무래도 혼자 있어서 관객들이 나만 봐서 재미 없진 않을까하는 생각? 그런데 촬영 중 감독과 충분히 의논하면서 그런 불안을 버릴 수 있게 됐고 이 영화가 가진 속도와 매력에 내가 의지했다.
- 요즘 통신사 광고가 많이 나오고 반응도 좋다. 그러고 보면 인기나 유명세에 비해 광고 출연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의도적인가
이번 광고 괜찮던가? 솔직히 광고를 여러 개하면 (이미지가) 소비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통신사, 주류, 의류, 케이블 채널 등 몇 편이 맞물리고 있는데 사실 고민이 좀 된다.
- 그런 의미에서 예능 등 방송 출연도 일부러 한정하는 건지?
그런 건 아니다. 예능이나 방송에 대해 늘 오픈하고 있다. 영화 프로모션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출연할 생각은 하고 있다. 이번에도 '더 테러 라이브' 때문에 라디오, 포털 채팅, 연예정보 프로그램, 영화 프로그램 등 꽤 많이 출연하지 않았나. 단지 '힐링캠프'는 작년에 출연했기 때문에 몇 년 간은 나가기 힘들 거 같다. 얘기할 에피소드가 더 쌓여야 한다. 하하.
- 그럼 드라마 출연은 어떤가. 너무 오래 영화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보고파하는 팬들도 많다. 당장 잡혀있는 영화 라인업만 봐도 역시나 당분간은 드라마 출연이 힘들어보이는데..
드라마는 생각은 굴뚝 같다. 하지만 솔직히 당장 하기가 힘들긴 하다. 이미 잡혀 있는 스케줄들 때문에. 드라마를 안하고 싶다거나 계획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좋은 작품이 있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할 생각이고. 개인적으로는 시트콤 같은 장르도 해보고 싶다.  
- 할리우드 러브콜 소식도 들렸다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건 없다. 우리 영화처럼 할리우드 쪽에서도 작품 제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중이긴 하다. 그런데 내게 절친한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가 있다. 한국 영화 자체가 세계 시장에서 상당히 인정받고 있고 우리 감독들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으니..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보다 한국에서 시나리오를 개발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프로듀서가 미국으로 돌아가선 시나리오를 개발해보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현지의 작가가 붙어 구상한 초안대로 시나리오가 개발 중이다. 또 내가 절친한 제작사 대표 분께 제의를 했더니 개발비를 보태기도 했고. 그래서 올해 초에 시나리오 초고가 왔었는데 아직 미흡한 것 같아 돌려보냈다.
- 할리우드 작품에 출연하는 게 아니라, 아예 주도적으로 개발을 한단 얘긴가
할리우드 작품도 국내 배우나 제작 시스템을 통해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
- 이병헌의 경우 이미 할리우드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그런 길을 밟을 수 있을텐데..
병헌이 형이 이미 너무 멋지게 활동하고 있고 자리를 만들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할리우드 관련한 조언도 듣고 에이전시도 소개받고.. 지난해 말부터 얘기를 나눠왔다. 물론 그렇게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에 들어가서 연기를 하는 것도 차근차근 할 계획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나대로 개발 쪽에도 신경을 써보려 한다.
하정우는 할리우드 진출 역시 남다를 것 같다. 기존의 배우들이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 뛰어드는 방법을 택했다면 하정우는 직접 국내 자본이나 시스템으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작품을 기획하는 색다르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뭐든지 열심히, 연기를 넘어 연출, 심지어 그림까지.. 못하는 게 없는 재주꾼 하정우는 팔딱이는 활어의 느낌을 선사했다. 하루, 한달, 한해를 계획적으로 쪼개어 살고 늘 무언가에 도전하며 새로운 것에 가슴 뛰는 이 못말리는 엔터테이너 하정우. 할리우드마저도 '하리우드'로 만들어버릴 기세다.
한편 하정우의 '더 테러 라이브'는 18일, 개봉 19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리고 하정우는 하반기 직접 연출한 영화 '롤러코스터'를 개봉하며 영화 '군도'(감독 윤종빈) 촬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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