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가 훌쩍 넘어가는 한여름 야외. 7만명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고막을 때린다. 밤하늘 빨갛게 빛나는 야광봉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관이다. 그 사이를 누비는 두 명의 남자는 과연 한류제왕이었다.
일본 도쿄돔은 이제 잊어라. 인기그룹 동방신기가 17~18일 드디어 7만2천명 규모의 일본 최고 규모 경기장 닛산 스타디움 공연장에 섰다. 공연을 2회 성황리 개최, 총 14만4천명을 동원하면서 일본 한류의 새 장을 열었다. 한국 그룹 최초로 도쿄돔 무대에 서서 한류의 정점을 찍었다고 대서특필된지 4년만. 동방신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이 곳에서 한국 가수 사상 최다관객을 열광케 하며 또 한번 후배 그룹들과의 '급'을 벌려놓았다.
도쿄에서 30~40분 거리.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 스타디움은 1998년 개장된 이후 최초로 동방신기를 통해 해외가수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현지에서도 엑스재팬, 라르끄앙씨엘, 이그자일 등 톱스타에게만 허락된 무대로 현지 가수 다 합쳐 동방신기가 '겨우' 13번째 가수다. 이틀간 티켓 매출액만 160억원. 톱스타만 가능하다는 5대 돔투어의 피날레 공연이었다.

이번 5대 돔투어에서 불과 2달 전 도쿄돔 공연을 3일이나 치른 이들은 스타디움 공연까지 다해 투어 티켓만 무려 87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총 관객수는 85만이다.

17일 오후 5시30분 공개된 이들의 무대는 어마어마했다. 첫곡 '페이티드(Fated)'를 부르며 멤버들은 22m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무대 양 끝에 서자 두 멤버간 거리는 무려 95m였다. 동방신기는 여기서 3시간 동안 총 26곡을 부르며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라이브로 몰아치는 무대에 끝도 없이 새로 등장하는 무대장치,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두 남자는 일본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한국 가수의 공연이 왜 동방신기의 차지인지 충분히 입증해냈다.
두 멤버는 초대형 무대를 쉴새없이 누비며 관객들을 고루 만족시켰다. 'Y3K'를 부를 때 등장한 우주선 모양 모노레일은 두 사람을 각각 태우고 120m 길이의 레일 위를 달렸다. 무대 맞은편에 내린 멤버들은 뒤쪽 무대에서 다양한 발라드곡을 부르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혔다. 무대는 메인을 비롯해 뒤편, 양 옆까지 포함해 4개나 설치됐다. 메인 무대는 2단으로 설치된데다 22m위 높이까지 꾸며졌는데 멤버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시종일관 눈이 바빴다. 무대 정면에 위치한 6개의 대형 스크린은 멤버들의 세세한 표정과 제스처를 놓치지 않았고, 그래서 윤호가 코를 찡긋하거나 창민이 손가락을 까딱해도 7만여명은 동시에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동방신기의 무대는 역시나 흠 잡을 데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입을 떡 벌리게 만든 게 가수가 아니라 관객임을 인정해야겠다. 7만2천명의 관객은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그대로 진격하면 쿠데타도 가능할 것 같았다. 공연 시작한지 1시간 후부터 하늘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는데 관객들이 손목에 찬 라이트와치는 주파수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을 내며 스타디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빛은 마치 CG 같았다.
물론 동방신기도 밀리지 않았다. 메인무대는 계단과 리프트가 번갈아 등장하며 트랜스포머처럼 변했고, 뒤편 무대도 갑자기 360도로 회전하거나 양 옆에서 리프트가 등장하는 등 잠시도 한눈을 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객석 구석구석을 누빈 건 우주선 뿐만 아니었다. 공연 후반부에는 자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스크린과 리프트가 달린 이동차를 타고 객석을 향해 사인 공과 원반을 던졌다. 밤하늘엔 반짝 거리는 종이가 날아올랐다.

이번 투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신곡 무대도 두 사람의 매력을 듬뿍 살렸다. 유노윤호는 '티 스타일'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를 자랑했고 창민은 '락 위드 유(Rock with you)'에서 고음이 폭발하는 가창력을 과시했다.
2008년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던 곡 '오정반합'의 무대는 의미 있었다. '요 윤호'가 낮게 깔리자 관객들은 하늘을 찌를듯 함성을 질렀고, 멤버들은 강렬한 발광 붉은 옷을 입고 포스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조명은 쉴새 없이 번쩍였고, 수시로 폭죽이 터지며 관객들을 긴장시켰다. 이어지는 '캐치미', '왜' 등의 무대는 여전히 박력 넘쳤다.
변화도 감지됐다. 카리스마 보다는 흥겨움에 방점을 찍었다.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만담을 펼치는 등 둘이 주고받는 개그의 비중을 높였으며, 일본 유행어도 자주 구사했다. 유노윤호는 요즘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이라며 '진격의 거인'을 흉내내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앙콜 무대였다. 특이한 점은 하이라이트에 카리스마가 아닌 친근한 곡을 배치했다는 것. 동방신기의 과거-현재-미래로 구성된 이번 콘셉트에서 미래에 해당되는 이 부분은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노래로 구성됐다. '서머 드림(Summer dream)' 등 일본 히트곡이 흐르고, 멤버들은 이동장치를 타고 스타디움을 누볐다. 120명의 댄서들은 레일 위에 올라 삥 둘러서 발랄한 춤을 췄고, 멤버들은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마음껏 귀엽고 코믹한 춤추며 축포를 쐈고, 덩달아 야광봉 물결도 크게 출렁였다. 거대한 축제였다.

유노윤호는 "스타디움에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건 모두 여러분 덕이다. 최고의 추억이 되겠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최강창민은 "오늘도 동방신기의 역사에 한 페이지가 추가됐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유창한 일본어로 진지하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울려퍼진 마지막 곡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무대에서는 멤버들의 막춤이 이어졌고, 화끈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신이 난 멤버들은 "이건 여러분을 위한 선물이다. 감사드린다"라고 크게 외치며 퇴장했다.
관객은 남녀 불문, 연령 불문이었다. 가족 단위도 많아졌다. 공연장을 찾은 가토 후미야(23, 남)씨는 "2년 전부터 동방신기의 공연에 오고 있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왔다. 다행히 엄마도 동방신기를 좋아해서 함께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아츠시(42,남)-아베 마나(42,여) 부부는 "동방신기 공연은 이미 여러번 본 적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가서도 보고 싶다. 귀엽고, 멋있고, 완벽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가미야우치 에이코(66, 여)씨는 "동방신기의 노래를 들으면 활력이 생긴다"면서 "딸과 함께 앉았는데, 나머지 4명의 가족들도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봤다. 온 가족이 동방신기의 팬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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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