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에이스’의 기준 중 하나로 보통 15승을 든다. 10승은 특정 구단 강세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15승은 진정한 강인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국내 투수 중 이런 강인함을 가진 선수가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15승 투수가 탄생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한국야구의 현실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3년 시즌도 어느덧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각 팀별로 91경기에서 97경기를 소화했다. 시즌 전체의 ⅔를 넘었다. 개인 타이틀 경쟁도 뜨겁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다승왕 경쟁이다. 생각보다 승수가 적다.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는 쉐인 유먼(롯데)이 12승이다.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선수는 배영수(삼성)과 니퍼트(두산, 이상 10승)까지 세 명, 8승 이상을 거둔 선수도 17명에 불과하다. “9개 구단 체제에서 20승도 나올 수 있다”던 전망은 싹 사라졌다.
그 17명의 선수 중 국내 선수는 8명뿐이다. 절반이 넘는 9명이 외국인 투수다. 올 시즌도 전체적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득세가 굳어지고 있다. 2007년 다니엘 리오스(두산·22승)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단독 다승왕이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한편 국내 선수들 중에서 15명 투수가 없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휴식일 일정을 고려하면 현재 각 선발 투수들이 나설 수 있는 최대 경기수는 7경기 남짓이다. 사실상 외국인 투수들을 당겨쓰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여 국내 선수들의 출전 경기수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현재 다승 상위 랭킹에 있는 국내 선수들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2경기에 1승 정도를 챙기고 있다. 현재의 페이스가 이어진다면 토종 15승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5승을 기록한 국내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던 마지막은 2009년이었다. 당시 다승 1위는 조정훈(롯데) 윤성환(삼성) 그리고 아퀼리노 로페즈(당시 KIA)로 14승이었다. 하지만 류현진(한화) 김광현(SK) 등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있었던 그 당시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나고 김광현 윤석민이 부상으로 고전하는 사이 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마담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일리가 있다.
일단 현장에서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여파라는 이야기가 많다. 선동렬 KIA 감독은 “올해 일정상 컨디션이 좋은 투수는 20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있었는데 각 팀의 에이스급 투수들이 WBC 여파를 받고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3월 WBC에 출전한 선발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지난해보다는 못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정이었던 일본의 경우는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이 쾌조의 페이스를 보여주는 등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올해 15승 투수 탄생 유무를 넘어 앞으로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투수들의 발전 속도가 타자들보다 늦다는 의견이 많다. 올 시즌 휴식일 변수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타고투저 흐름이 튀어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10년 이후에는 새로운 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다. 고교 유망주들이 아마시절 너무 많은 투구를 하다 보니 프로에서는 좀처럼 가능성을 만개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과도 직결된 문제일 수 있다. 불확실한 토종 15승의 탄생 가능성은 생각보다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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