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인기가 뜨거워지면서 시구 행사도 보편화됐다. 과거 정치인들의 시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시구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수도권 모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예전에는 시구 행사에 나설 연예인을 섭외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갑을 관계가 뒤바꿨다"고 말할 정도다.
그럴만도 하다. 독특한 시구 장면을 연출하면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방송 출연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 시쳇말로 한 방에 뜰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이러다 보니 시구 행사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시구 행사를 순전히 홍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게 부지기수다. 한 야구 원로는 "일부 무명 연예인들이 야구 시구로 인생 역전을 노리는 것 같다"며 영혼없는 시구 행사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야구팬들은 감동적인 시구를 원한다. 한화 이글스는 남다른 시구 행사를 선보이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5월 19일 대전 두산전서 개막 13연패 탈출 후 눈물을 흘린 여성팬을 시구자로 초대했고 지난달 2일 대전 롯데전에 앞서 야구 꿈나무 이영찬 군이 루게릭병으로 사투 중인 아버지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7일 청주 SK전서 지역 다문화 가정 및 탈북자 청소년들을 초청했다. 이날 시구는 청주에 사는 중학생 이가희 양이 맡았다. 이 양이 마운드에 올라 힘껏 공을 뿌린 뒤 포수에게 공을 건네는 순간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기 때문.
한화 측은 "평소 아버지의 바쁜 일정 때문에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는 사연을 들었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와 몰래 이벤트를 준비했다. 부녀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삼성 라이온즈 또한 6월 23일 LG와의 홈경기에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늦둥이 아들에게 시구 및 시포 기회를 제공했다. 이승엽이 시타를 자청하기도 했다. 또한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대구 LG전서 문신자 (사)독도사랑범국민운동본부 공동 대표의 시구 행사를 추진했다.
프로야구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그리고 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구단들은 프로야구 인기에 무임승차하려는 일부 연예인들의 영혼없는 시구 행사보다 감동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시구 행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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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SK-두산 잠실경기에서 지난 1982년 봉황대기 고교야구에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멤버로 출전해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총 6게임을 완투한 양시철씨가 시구를, 당시 주전 외야수로 활약한 재일동포 김근씨가 시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