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극본 권순규 이서윤, 연출 박성수 정대윤)가 연일 시청률이 하락하며 아쉬움을 자아낸다. 방송 초반 매력 있는 주인공들과 연기파 중견 배우들의 활약으로 큰 기대감을 줬던 것에 비해 조금은 실망스러운 결과다.
사실 ‘불의 여신 정이’는 갖출 것은 다 갖춘 드라마다. 일단 웬만해서는 전 세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만한 사극 장르에다 고정된 팬 층을 갖고 있는 배우 문근영, ‘엄친아’ 이미지로 인기가 상승 중인 이상윤, 꽃미남 김범, 그밖에도 뛰어난 외모에 연기력까지 갖춘 서현진, 박건형 등 배우들이 대거 주연으로 나섰다. 또 지난 2003년 한류 열풍을 이끈 ‘대장금’처럼 뛰어난 조선시대 여주인공의 성공기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큰 성공을 점쳐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불의 여신 정이’는 이런 요소들에도 불구, 경쟁작들과의 시청률 전쟁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꾸준히 유지해 오던 두 자릿수 시청률도 지난 12일 13회 방송분부터는 9.1%를 기록하며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처럼 ‘불의 여신 정이’가 스스로 갖추고 있는 흥행 요소들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무엇보다 조금 답답한 여주인공의 캐릭터에 아쉬움을 보내는 목소리가 많다. ‘대장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어떤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는 주인공 장금이의 비범한 면모가 한몫했다. 얌전하지만 뚝심 있는 여주인공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시련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던 것.
그러나 ‘불의 여신 정이’ 속 주인공 정이 캐릭터는 어딘지 모르게 현대극의 캔디 캐릭터와 닮았다. 두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동시에 받으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느라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비범한 인물의 속 시원한 성공기를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이런 의존적인 여주인공은 너무 매력이 없다. 물론 문근영은 특유의 매력으로 이런 캐릭터를 밉지 않게, 비교적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살려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조력자가 너무 많은 여주인공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응원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밋밋한 전개와 엉뚱한 편집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불의 여신 정이'는 드라마의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악인의 계략으로 계속되는 위기에 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 그러나 악인의 수법이 조금 '아침드라마'스럽다. 너무 빤히 보이는 계략을 펼쳐 이게 진짜 위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지난 19일 방송분만 해도 정이(문근영 분)와 문사승(변희봉 분)에게 위기를 가져다주는 이강천(전광렬 분)의 계략은 고작 가마의 온도 조절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회차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작은 계략으로 인해 정이의 활약도 그다지 부각될 수가 없다.
또 엉뚱하게 넘어가는 편집점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많다. 주인공들의 로맨스 장면이 전개됐다가도 그 다음 장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내용이 진행돼 편집이 뚝 끊어지는 느낌을 준다는 것. 지난 19일 방송분에서도 정이에게 고백하는 태도와 이를 거절하는 정이의 모습이 그려진 후 어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그 다음 궁궐 장면이 이어져 몰입감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불의 여신 정이'는 그대로 보내기에 너무 아까운 재료들로 가득하다. 특히 방송 전 낳았던 기대감을 기억한다면 아쉬움이 더 크다. 총 32부작인 드라마는 이제 반 정도까지 왔다. 남은 반의 분량 동안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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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