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방극장은 오랜만에 월화극-수목극 각각에서 시청률 20%에 도전하는 최강자들이 탄생해 눈길을 끈다. 이 쌍두마차 구조에는 캐릭터적인 공통점이 있다. 남자 주인공들이 모두 '한 성질'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앞에서는 틱틱대다가 뒤에서는 잘 해주는 '실장님'이 아닌, 너무 아프게 혼내고 때로는 인격적인 훼손감을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의사 선생님과 쇼핑몰 사장이다. 하지만 이 남자들은 '요물'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안방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성 시청자들은 마조히스트?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KBS 2TV 월화드라마 '굿 닥터'의 주상욱은 '욱상욱'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하도 '욱'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이 '욱'에는 '옳은 말'만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극 중 그가 분한 소아외과 부교수 김도한은 너무나 엄격하고 완벽해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주는 인물이다. 여기에 작은 실수에도 불호령을 내려 넘치는 카리스마와 '못된 성격'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여주인공이자 후배인 차윤서(문채원)이 자신에 대한 교육 방식이 못마땅하다고 하소연하자 "니가 약한 건 사실이잖아"라는 독설을 내뿜는다. 무턱대고 환자를 수술방으로 데려온 시온(주원)에게는 수술 마무리 후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차윤서에게 독설을 날린 이유는 그가 첫 집도에 실패한 후 트라우마를 입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였고, 아이같은 시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시온과 비슷했던 형제를 잃은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 또 그가 내뿜는 호통에는 환자를 가려가며 받는 이들에 대한 분노, 제대로 된 소아외과 의사가 없어 환자를 죽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반영돼 있다.
이처럼 욱상욱은 단순히 나쁜 남자가 아니라 '멘토'다. 한없이 보듬어주는 것만이 힐링이 아님을 욱상욱은 보여준다.
다른 한 편에는 "꺼져!"를 입에 달고 사는 남자가 있다. '주군의 태양'의 소지섭은 공효진에게 "꺼져, 얼른 꺼져! 꼭 세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군"이라며 사정없이 독설을 내뱉는다.
극 중 소지섭이 분한 주중원은 여자의 얼굴을 폄하하고 속마음을 숨김없이 내뱉는다. 중원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공실(소지섭)에 매번 짜증을 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하지만 "꺼져"라고 했을 때 한 번에 돌아서자 내심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이 남자의 귀여움이다.
여자에게 던지는 "꺼져"라는 대사는 자칫 듣는 이에게 불쾌한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소지섭의 '꺼져'는 그저 그의 공식멘트와 같은 격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긴다. 막상 공실에게 감정 이입을 해 본다면 인격 모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중원의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이를 커버한다.
중원은 홍자매의 전작인 '최고의 사랑' 속 인기 캐릭터였던 독고진(차승원 분)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로 안하무인 까칠하면서도 귀여운 반전을 지닌 점이 닮았다. 제스처나 표정, 말투도 어딘가 비슷하다. 독고진에게 "극뽁"이 있었다면 소지섭에게는 "꺼져"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나쁜 대사가 입에 착착 붙고 중독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누가 나한테 (소지섭처럼)'꺼져'라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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