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번에는 크게 이기고 있을 때 나가보고 싶다."
23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삼성 중심타자 최형우가 무려 11년 만에 포수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게 된 것. 당시 3번 지명타자로 경기에 출전했던 최형우는 8회 바뀐 포수 진갑용이 부상을 입자 곧바로 포수 장비를 착용한 뒤 투입됐다. 최형우가 1군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포수 마스크를 쓴 건 2002년 10월 1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이후 11년 만이다.
보통 1군 엔트리에는 포수 2명을 둔다. 만약 교체 투입된 포수까지 부상을 입는다면 더 이상 마스크를 쓸 포수는 1군에 없다. 때문에 각 구단은 '보험용 포수'를 둔다. 야수들 가운데 포수출신 선수들로 하여금 만약의 상황을 대비, 포수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삼성은 최형우를 1번, 박석민을 2번 예비포수로 두고 있다.

24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삼성 류중일 감독은 "최형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포수를 잘 보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최형우와 박석민을 준비시켰다. 최형우는 스프링캠프에서도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형우는 오랜만에 포수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한 포구를 보여줬고 무리없이 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최형우를 만나 '포수 잘 보더라'고 말을 건네자 크게 웃으며 "포수로 프로 지명을 받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했다. 최형우는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앞서 야수들이 갑작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썼던 경기를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다. 사실 최형우는 2002년 포수로 입단, 큰 기대를 받았지만 송구에 약점을 드러냈고 타격에 비해 수비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2005년 삼성에서 방출됐던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포수로 어떤 훈련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그냥 불펜피칭 하는데 가서 공만 좀 받았다. 다른 연습은 안 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인을 따로 냈냐는 물음에 그는 "당연히 우리 팀 사인인데 알고 있다. 벤치에서 따로 사인이 나오지 않았고 투수에 맞춰서 사인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가 착용했던 포수 장비는 모두 이지영의 것. "다행히 잘 맞더라"고 말한 최형우는 진갑용에게 들은 잔소리도 공개했다. 최형우는 "원래 포수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비스듬히 놓는 버릇이 있었다. 진갑용 선배님이 그걸 보시더니 '너 아직도 그거 못 고쳤냐'고 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포수를 봐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한 최형우. 아쉬운 점은 팀이 대패를 하는 날 포수로 출전한 것이다. 그는 "다음 번에는 크게 이기고 있을 때 포수로 나가보고 싶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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