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안하면 기회는 온다" 이양기 인생역전 스토리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3.08.25 06: 08

"2군이라고 기죽지 마라. 포기하지 않으면 한 번은 기회가온다". 
한화 외야수 이양기(32)가 무섭게 방망이를 치고 있다.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다. 이양기는 8월 1군 복귀 후 13경기에서 49타수 21안타 타율 4할2푼9리 1홈런 10타점 불방망이 휘두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2안타 이상 멀티히트가 6경기로 그 중 4경기가 3안타 이상. 5안타 경기도 한 번 있다. 이양기 생애 최고의 나날들. 오랜 시간 2군에서 무명 선수였던 그가 데뷔 11년차가 돼 화려한 빛을 보고 있다. 짜릿한 인생 역전의 스토리다. 
▲ 3루수에서 외야수, 길었던 무명 생활

인천 동산고 출신으로 지난 1999년 2차 12번 전체 90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이양기는 탐라대에 진학한 후 2003년 프로 입단했다. 원래 포지션은 3루수. 그러나 "내야 수비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외야수로 전향했다. 당시 한화 3루는 이범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양기의 외야 포지션 이동은 생존이었다. 그는 "외야수로 거의 반년 정도 연습했다. 2군에서 경기에 많이 내보내줘 적응할 수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1군 기회가 없었다. 2003년 1경기, 2004~2005년 각각 10경기밖에 못 뛰었다. 한화 전력이 최고였던 2006년은 아예 2군에만 머물렀다. 그해를 끝으로 상무에 입대하며 2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하지만 2009년에도 1군에서 1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주축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대거 은퇴한 2010년 27경기를 뛰었으나 타율 1할3푼6리에 그쳤다. 2군에서의 무명 생활이 길었던 그에게는 시련과 인고의 날들이었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던 시기였다"고 이양기는 되돌아봤다. 
▲ 최고의 대타 그러나 또 찾아온 시련
거의 8년의 무명 생활. 하지만 해뜰 날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전문 대타 요원으로 93경기 타율 2할7푼9리 17타점으로 활약한 것이다. '대타하면 이양기'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는 '대타' 역할만 한정돼 있었다. 더 큰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으나 뜻대로 안 됐다. 그는 "가끔 이상한 플레이를 해서 그렇지 수비는 원래 자신있다"고 했지만 어느새 타격은 좋지만 수비가 약하다는 이미지가 붙었다. 
대타 전문선수는 타격이 안 되면 경쟁력이 없다. 이양기는 매타석 기회 때마다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2012년부터는 다시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는 생활이 계속 됐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데 조바심이 생겼다. 젊은 선수들로 새롭게 리빌딩하고 있는 올해는 기회가 더욱 줄었다. 2군도 아니고 3군으로 떨어져 한 달 반 넘게 '유배' 생활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선수들은 하나둘씩 팀을 떠났다. 그 역시 위기의식을 느꼈다. 스스로 야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이정훈 2군 퓨처스 감독의 조언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 마지막 기회, 4할대 불방망이로 대폭발
버티고 버틴 이양기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른손 대타감이 필요하다"는 김응룡 감독의 긴급 요청에 따라 지난 2일 마산 NC전을 앞두고 콜업됐다. 서산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그는 석장현 홍보팀 매니저의 승용차를 타고 마산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뛰는 여정이었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도 나이가 있는데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절박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2군과 3군에 있는 동안 그는 우측으로 밀어치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원래는 당겨치기만 했는데 결대로 밀어치는 연습을 했다.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배트 무게도 줄여서 더욱 가볍고 정확하게 칠 수 있는 연습을 했다"는 게 이양기의 설명이다. 그의 방망이는 그간의 설움을 씻어내듯 대폭발했고, 8월 한 달간 가장 뜨거운 타자로 떠올랐다. 어느새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는 "주전 자리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3주 정도 활약했을 뿐이다. 그보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하겠다. 수비도 외야든 1루든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 2군 무명 선수들이여,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양기는 "이제는 부담 없이 마음 비우고, 내 스윙을 하려고 한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니까 야구가 된다"고 말했다. 이양기의 벼랑끝 대활약은 지금도 2군의 땡볓 아래에서 뛰고 있는 이름 모를 무명의 선수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양기도 한 때 이름없는 2군 선수였다. 10년 넘게 이어진 시련과 고난 속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버티고 또 버텨서 살아남았다. 2군 무명 선수들에게는 지금의 이양기가 큰 자극제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이양기는 "2군에 있는 동안에도 언제나 기회가 한 번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를 준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며 "누구든지 준비만 잘 하고 있으면 기회가 온다. 2군에서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꼭 오게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이양기를 오랫동안 지켜본 팀 선배 강동우도 "양기는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감독-코치님들이 믿어주시니까 더욱 힘이 난다. 양기가 잘 돼 보기 좋다"고 흐뭇해 했다. 포기를 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한 번 온다. 이양기의 인생 역전 스토리가 주는 교훈이다. 
waw@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