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3실점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투구였다. 상대 배트 중심을 빗나가는 공을 연이어 던졌다. 그런데 1회초 3실점 과정 직전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충분히 다음 경기서 잘 던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비췄다. 두산 베어스의 새 외국인 우완 데릭 핸킨스(30)는 두산의 30번 외국인 투수로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보여준 맷 랜들(36) 앞에서 자기 몫을 해냈다.
핸킨스는 지난 25일 잠실 한화전에서 6⅓이닝 동안 6피안타(탈삼진 3개, 사사구 3개) 3실점으로 선발로서 기본 몫을 해냈다. 1회 집중타로 3실점하기는 했으나 7회 구위가 떨어지며 1사 1,2루에서 유희관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대체로 안정적인 투구를 펼쳤다. 재미있는 것은 이날 경기를 2005~2008시즌 두산에서 활약하며 통산 49승을 올린 랜들이 관중석에서 지켜봤다는 점이다.
일본 다이에(소프트뱅크의 전신)-요미우리에서 2군이 더 익숙한 육성형 외국인 투수로 야구 인생을 보내다 2005년 두산의 외국인 투수로 한국 땅을 밟은 랜들은 실력은 물론이고 수더분한 성품으로 팬과 동료들의 사랑을 받았던 투수였다. 2009시즌 개막 직전 허리 부상을 입으며 퇴출된 랜들은 두산을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다 최근 한국 여성과 결혼하며 이중국적 형태로 한국 국적도 취득, 서울에서 거주 중이다.

30번 터줏대감이었던 랜들이 떠난 뒤 두산의 30번 선수들은 한국에서 1시즌을 넘지 못했다. 2009년 랜들의 후임이었던 후안 세데뇨에 이어 2010년 레스 왈론드, 2011년 라몬 라미레스-페르난도 니에베. 그리고 지난해 마무리를 맡았던 스캇 프록터, 핸킨스의 전임이었던 좌완 개릿 올슨까지 30번 외국인 투수들과 두산의 인연은 1년을 넘지 못했다. 프록터가 지난해 35세이브로 역대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우는 등 30번 외국인 투수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5일 핸킨스의 투구는 랜들의 두산 시절 말미와 비슷했다. 랜들도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는 140km대 후반의 포심과 완급조절형 체인지업을 던지던 투수였으나 팔꿈치 통증 후 직구 구속이 감소하며 여러 가지 구종을 섞어 던지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날 최고 145km의 포심을 던진 핸킨스는 투심-슬라이더-체인지업을 섞어 던졌으며 간간이 120km대 파워커브도 구사했다. 탈삼진을 많이 잡지 못했으나 그럭저럭 이닝을 소화하던 2007~2008년의 랜들과 비슷했다.
첫 회 2사 후 3실점하기는 했어도 2사 3루서 최진행에게 볼넷을 내주기 직전까지 투구도 나쁘지 않았다. 선두타자 고동진에게 좌익수 방면 안타를 내준 핸킨스는 한상훈의 희생번트에 이어 이양기의 유격수 땅볼로 2사 3루를 맞았는데 최진행에게 풀카운트 끝 볼넷을 허용했다. 그런데 6구 째로 던진 몸쪽 슬라이더는 어이없는 볼이 아니라 심판에 따라 스트라이크로 판정될 수도 있던 좋은 결정구였다. 그러나 이 공이 볼로 판정되며 핸킨스가 평정심을 잃고 송광민 타석에서 폭투에 이은 두 개의 안타를 허용했고 결국 핸킨스의 발목을 잡았다.
악몽의 1회를 넘긴 핸킨스는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며 한화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다. 특히 평균 140km 가량의 투심 패스트볼은 총 23개를 구사했는데 스트라이크 18개-볼 5개로 공격적 투구를 보여줬다. 최고 139km까지 계측된 슬라이더도 18개 중 스트라이크 12개-볼 6개로 제구가 괜찮았다. 15일 KIA전 7이닝 무실점 승리는 사실 KIA 타자들의 빈공 덕도 많이 보았으나 25일 한화전에서는 핸킨스의 호투 모습도 많이 보였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전무했으나 한국 무대에서 코리안드림을 그려내고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랜들. 그가 떠난 후 두산은 수 년 간 30번 외국인 선수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지난해 좋은 활약을 보여준 프록터도 사실 경기 내용이 안정적인 편은 아니라 두산이 고민했던 케이스. 순둥이 인상이지만 승부욕도 대단한 편인 핸킨스는 아직 두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완의 30번 투수다. 2007~2008시즌 랜들의 투구와 엇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핸킨스는 남은 시즌 동안 깔끔한 호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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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