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폭염이 한풀 꺾이고 있다. 하지만 폭염에 지친 체력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은 경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폭염으로 인해 그라운드를 구성하고 있는 잔디가 말라 죽었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는 그라운드는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지 않아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제주월드컵경기장도 폭염의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바닷가에 위치한 덕분에 많은 바람이 불지만 정작 그라운드에는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그라운드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파여있다. 특히 선수들이 밀집한 상태서 움직임이 많은 문전과 박스 근처는 잔디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은 K리그 클래식 1라운드부터 13라운드 동안 선정한 그린 스타디움(Green Stadium)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린 스타디움상'은 선수들이 최상의 상태에서 경기를 선보일 수 있도록 잔디 관리에 힘쓴 경기장 관리 주체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K리그 클래식 14개 경기장을 대상으로 매 경기 100분 전 경기감독관, 매치 코디네이터, 심판, 홈경기 관리책임자가 그라운드 상태 평가 항목을 세분화한 잔디발육 현황, 그라운드 평평함, 라인, 그라운드 딱딱함, 배수 등의 항목으로 평가한다. 그린 스타디움 신설 첫 해인 지난해에도 종합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제주월드컵경기장은 1라운드부터 13라운드 평점에서도 10점 만점에 9.9점을 받아 최고의 그라운드로 선정됐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게끔 만들 수 있게 한 노력은 경기력에서도 나타났다. 간결하고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위주로 펼치는 제주에 최상의 잔디 상태는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됐다. 제주는 잔디 상태가 좋았던 13라운드까지 홈에서 5승 1무를 달리며 보는 이들에게 최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제주의 좋은 경기력은 관중 증가에도 큰 힘이 됐다. 제주는 13라운드까지 홈에서 열린 6번의 경기서 총 6만 5059명이 찾아 경기당 평균 1만 843명을 기록했다. 2011년 평균 4609명, 2012년 평균 6538명과 비교하면 대폭 상승한 수치다. 이 때문에 제주는 언론사가 선정한 '팬 프랜들리 클럽(Fan-friendly Club)'으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의 이런 모습은 지금 찾아볼 수가 없다. 최고의 상태로 평가 받은 잔디 관리는 최악에 가까워졌다.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제주의 패스 플레이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이 때문에 제주는 최근 홈 7경기서 4무 3패로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중원에서는 예전과 비슷하게 패스를 유지하며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지만, 잔디 관리가 전혀 되지 못한 문전과 박스 주변에서는 패스 성공률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지난 24일 전북 현대와 경기서도 제주는 문전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해 경기를 주도했음에도 0-3으로 졌다.

승전보를 알리지 못하면서 제주의 관중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올해 홈 최다 관중이 들어선 FC 서울과 홈경기를 반환점으로 6경기 동안 3만 9616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6602명으로 대폭 떨어졌다. 홈 경기 무승의 여파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는 떨어진 관중을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여름을 맞이해 'Water Cool Party'를 개최했다. 무더위와 열대야에 시달린 제주도민에게 힘을 불어 넣기 위한 이벤트였다. 또한 경기 중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전국 유일의 40m 물줄기라고 자랑한 캐논포 발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관중은 물대포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것이 아니라, 제주 선수들이 승리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의 모습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관중 유치의 원동력은 팀의 성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케팅 노력도 관중 동원에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는 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메인 이벤트가 없어진 상황에서 부가적인 재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떨어진 경기력이 무엇 때문이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도움을 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잔디이지만, 잔디가 살아날 경우 선수들에게 적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잔디 관리의 주체는 제주가 아니다. 하지만 관리 기관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잔디를 보호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관중의 더위를 식히기 위한 물줄기 캐논포은 기발하고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때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대형 강풍기를 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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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 캐논포 / 제주 유나이티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