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성진그룹이라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대기업 일가의 지리멸렬한 이전투구를 담는다. 욕망의 덫에 사로잡힌 손현주, 고수, 이요원, 김미숙은 어느새 행복의 가치를 돈과 권력에만 둔 채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황금의 제국’은 1990년대 초부터 20여년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격동기 제왕자리를 두고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쟁탈전을 그린 가족 정치 드라마를 표방한다. 가족 드라마와 정치 드라마라는 쉽게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조합은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짙게 드리운다. 정치판이 촘촘하게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가족애에 대한 동경은 이 드라마가 결국에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단번에 알아차리게 만든다.
지난 27일 방송된 18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행복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성진그룹과 그를 탐하는 장태주(고수 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성진그룹은 그동안 최서윤(이요원 분)과 최민재(손현주 분), 그리고 최서윤의 새 어머니인 한정희(김미숙 분)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끊임 없는 권력 쟁탈전을 벌였던 곳. 시작은 성진그룹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권력과 재력에 대한 욕망 밖에 남지 않은 태주가 가세하며 그야말로 경영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18회는 하나씩 날개가 꺾인 이들이 자신들의 싸움이 지옥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하는 악순환이 여실히 그려졌다. 태주는 이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자는 윤설희(장신영 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겠다며 성진그룹 암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미 욕망의 덫에 발목이 잡힌 태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
서윤 역시 이복 동생 최성재(이현진 분)가 자신과 새 어머니 정희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감옥살이를 자처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진그룹 주인 자리를 노렸다. 이미 교수의 꿈을 포기한 그는 그동안 권력과 재력의 개로 멸시했던 사촌 민재와 다름 없이 변모해 있었다. 아버지 최동성(박근형 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명분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이미 서윤은 욕망의 화신이 돼 있었다.
민재는 아버지 최동진(정한용 분)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나섰음에도 성진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사랑한 아내를 버리고 정략결혼까지 한 그다. 그는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에 눈물을 쏟으면서도 어떻게든 사촌 서윤과 악랄한 태주의 노림수를 뒤집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정희 역시 아들의 희생에도 성진그룹을 포기하지 못하며 결코 모성애로 성진그룹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던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황금의 제국이라는 번쩍이고 화려한 빛을 쫓는 이들은 모두 욕망의 노예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잔혹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술수와 계략, 협력과 배신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정쟁의 도구들은 얽히고설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점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황금의 제국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동시에 진짜 행복과 거리가 멀어진 채 욕망의 덫에 허덕이는 성진그룹 사람들의 이야기는 안방극장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강한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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