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와 천사’, 에이스 커쇼의 두 얼굴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8.29 06: 13

평소에는 한없이 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나이다. 선행도 아끼지 않는다. 몇몇 스타 선수들이 잡음을 일으키는 사생활도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만 올라가면 그런 천사의 얼굴은 사라진다. 누구보다 강한 투쟁심으로 무장한다. 클레이튼 커쇼(25, LA 다저스)가 그런 선수다.
커쇼는 28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5⅔이닝 7피안타 3볼넷 9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여러모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날이었다. 커쇼 스스로 경기 후 “전반적으로 구위가 좋지 않았다”라고 했을 정도로 최근 경기에 비해서는 흐름을 지배하지 못했다. 여기에 타선도 상대 선발 트래비스 우드에 꽁꽁 묶여 고전했다. 그 결과는 커쇼의 시즌 8번째 패배였다.
커쇼는 0-1로 뒤진 6회 2사에서 카스트로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고 추가 실점했다. 안타가 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커쇼는 허공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미 한 차례 마운드에 올라 커쇼의 상황을 점검했던 돈 매팅리 감독은 다시 마운드에 올라 커쇼의 교체를 결정했다. 6이닝을 채우지 못한 커쇼는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덕아웃으로 들어와 괴성을 지르고 물품들을 집어 던졌다. 마치 야수 같았다.

카메라에 잘 잡히지는 않지만 커쇼의 이런 모습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분노의 대상이 동료인 것도 아니다. 스스로의 투구 내용을 자책하는 것이다. 그런 커쇼를 두고 포수 A.J 엘리스는 “내가 공을 받아본 선수 중 가장 투쟁심이 강한 선수 중 하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밝은 얼굴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마음 깊숙한 곳의 투지가 지금의 ‘에이스’ 커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야수의 모습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 때로 끝낸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다. 커쇼는 28일 경기 후 20명 가까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취재진의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고 때로는 미소를 보이며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경기 중 타구에 맞은 왼 발목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 괜찮다”라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29일 경기를 앞두고 가장 먼저 출근한 선수 중 하나가 커쇼였다는 점이다. 29일 경기는 현지시간으로 낮 12시 10분에 시작했다. 전날 1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만큼 가장 피곤한 이는 커쇼였을 법했다.
그러나 커쇼는 경기장에 일찍 나와 러닝을 했고 그레인키와 함께 캐치볼로 몸을 풀었다. 돈 매팅리 감독은 29일 경기를 앞두고 “오늘 내가 경기장에 나와 가장 먼저 본 선수가 커쇼”라면서 “괜찮아 보였다”라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투쟁심과 성실함이 커쇼의 위대한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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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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