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대로’ 노경은, 반석에 오르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8.30 10: 40

한때 2군에서 그를 만나 덕담을 하면 “제가 되겠어요”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20대 대부분은 말과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갔고 은퇴 위기도 몇 번씩 그를 위협했다. 그대로 쓰러질 뻔 했던 한때의 최대어는 공을 던지기 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되뇌이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이제는 누가 뭐래도 팀 최고의 선발 투수다. 두산 베어스 우완 에이스 노경은(29)은 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야구를 하는 투수가 되고 있다.
노경은은 29일 마산 NC전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5피안타(탈삼진 7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8승(8패)째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노경은은 올 시즌 국내 투수 최다이닝(148이닝, 전체 5위), 최다 탈삼진(131개, 전체 2위), 최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16회, 전체 5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3.53으로 전체 10위이자 국내 투수 5위다.
2003년 데뷔 이후 우리 나이 스물 일곱 때였던 2010년까지 노경은은 힘든 야구 인생 만을 살았다. 데뷔 초기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놓고 구단과 마찰을 벌였고 공익근무 소집해제 후에는 제구난과 부상으로 인해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2군에서는 7이닝 무실점 등 쾌투를 이어갔으나 정작 1군에서는 제 자리를 못 잡기 일쑤였다. 팬들은 노경은에게 대놓고 비난을 일삼았고 노경은은 팬들과도 마찰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되는 것이 없던 야구 인생이었다. 힘내라는 누군가의 덕담에도 노경은은 “제가 되겠습니까”라는 말을 되뇌었다. 자기 공을 확실히 믿지 못하고 표류하던 노경은은 2011시즌부터 계투 마당쇠로 분전하더니 지난해 12승으로 우뚝 서며 어느새 팀 선발진의 주축이 되었다.
“한창 힘들 때 (이)재우 형이 ‘네 공이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적어도 3년은 직구만 던져도 상대 타자가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믿고 던졌습니다. 친구 전병두(SK)가 했던 것처럼 공을 던지기 전에 구종을 이야기하고 ’들어간다, 들어간다‘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던지니 그 방법도 잘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되었다.
비록 올 시즌은 승운이 없으나 노경은은 WBC에서의 부하 우려를 뒤로 하고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승리를 제외하고 선발 투수가 할 수 있는 누적 스탯으로는 노경은이 현재 국내 최고다. 자기 공을 믿고 준비 과정에서의 성실함을 잃지 않으며 몸 관리를 스스로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NC전서는 2회 무사 만루 위기를 이상호의 3루 병살타 이후 김종호를 유인구로 헛스윙 삼진 처리,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담력을 보여줬다.
경기 후 노경은은 “경기 중 우천 중단으로 인해 쉬다가 던지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정명원 투수코치님과 상의해 6회까지만 던졌다”라며 2회 무사 만루 위기를 넘은 데 대해 “위기였으나 느낌은 좋았다. 먼저 걱정하기보다 병살타가 나올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또 마침 병살이 나오면서 ‘오늘 잘 풀리겠구나’ 생각했다. 최근 타격 페이스가 좋던 이상호 타석이라 좀 더 집중해서 던졌다”라고 경기를 되돌아보았다. 한때 되는 것이 없던 만년 유망주가 위기에도 여유를 갖고 생각한대로의 경기를 펼친 순간이다.
그에게 귀중한 조언을 해준 이재우는 노경은에 대해 “변하지 않는 녀석”이라고 이야기했다. 야구가 잘 될 때도 잘 안 될 때도 한결같이 순수하고 착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고 무기를 믿지 못하던 20대의 노경은은 이제 없다. 대신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생각한대로 던질 수 있는 갓 서른의 주축 선발 노경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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