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한국체조선수의 세계선수권 메달획득이 당연시 됐나?
손연재(19, 연세대)가 한국리듬체조 역사를 새로 썼다. 손연재는 31일(한국시간) 새벽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끝난 2013 국제체조연맹(FIG)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결선 A그룹(개인종합 예선 1위~12위) 무대에서 12명 중 5위에 올랐다. 한국체조 역사상 톱5에 든 것은 손연재가 처음이다.
▲ 큰 실수 없었던 감기투혼

손연재는 리본 17.516점 후프 17.783점, 볼 17.683점, 곤봉 17.350점을 받으며 총점 70.332점을 받았다. 18점이 넘는 고득점은 없었다. 하지만 곤봉을 제외하면 모두 17.500점을 넘겼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 번 세계 5위에 오른 손연재는 명실상부 ‘월드클래스’임을 증명했다.
이번 손연재의 성적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일부 팬들과 언론은 손연재의 이번 대회를 ‘실패’와 ‘추락’으로 단정 짓고 있다. 기대했던 ‘메달’을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손연재의 이번 세계선수권 활약이 실패일까.
손연재가 5개 월드컵 연속 메달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손연재는 작은 실수가 반복돼 감점요인이 많았다. 또 경쟁자에 비해 고난도 연기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손연재는 대회직전 감기에 걸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연기를 마쳤다. 런던올림픽처럼 곤봉을 떨구는 최악의 실수는 없었다.
결과를 떠나 손연재의 정신력이 폄하돼서는 곤란하다. 예선 1위를 기록한 마르가리타 마문(18, 러시아)이 큰 실수를 범해 총점 70.290점으로 6위에 머물 수 있는 것이 리듬체조다. 외부상황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연기를 잘 마친 손연재의 정신력은 분명 칭찬받아야 한다.

▲ 세계 5위, 월드클래스 증명
이번 대회서 손연재보다 잘한 선수는 세계에 단 4명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신예 야나 쿠드랍체바(16)는 총점 73.866점으로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안나 리자트디노바(20, 우크라이나)가 총점 73.041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멜리티나 스타니우타(20, 벨라루스)는 72.166점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중국의 덩썬웨는 70.374점으로 4위에 올라 아시아 선수 중 최고성적을 거뒀다.
‘체조 여제’ 예브게니아 카나예바(23, 러시아)가 은퇴한 후 리듬체조계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하지만 마문, 쿠드랍체바, 리자트디노바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객관적으로 손연재의 기량이 세계 3위 안에 들 것이란 예상은 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연재에게 메달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욕먹을 상황은 아닌 것이다.
손연재는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꼭 따내겠다’는 식의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보도는 너도 나도 손연재의 메달획득 가능성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언론이 지나치게 부풀린 기대감이 오히려 손연재와 팬들에게 독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리듬체조 역사상 첫 세계선수권 5위라는 업적은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다.

▲ 손연재는 김연아가 아니다.
손연재와 김연아(23, 올댓스포츠)의 공통점은 비슷한 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미모의 운동선수라는 점이다. 피겨스케이팅과 리듬체조가 종목은 다르지만 여성의 미를 최대한 자아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피겨역사상 최고선수라는 극찬을 듣는 김연아와 손연재의 실력은 아직 차이가 크다.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김연아는 주니어시절부터 나가는 대회마다 메달을 놓쳐본 적이 없다. 항상 압도적인 점수 차로 2위를 누르는 김연아는 금메달이 확실시 된다. 어쩌다 한 번 은메달을 따면 화제가 될 정도다. 김연아는 금메달 단상에 오르는 것이 버릇이 될 정도로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런 김연아의 잣대로 손연재를 재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김연아가 세계 5위를 했다면 엄청난 부진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11위를 했던 손연재라면 장족의 발전으로 봐야 한다. 굳이 김연아와 비교해 손연재를 폄하하고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김연아와 손연재 모두 한국을 대표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는 국보들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두 선수 모두 따뜻하게 감싸 안고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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