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실점 8승’ 유희관, 장호연 데칼코마니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9.01 19: 49

던지는 손은 다르고 얼굴 생김새도 다르다. 그러나 크지 않은 체구와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충분히 잘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두산 베어스의 최대 수확 중 한 명인 좌완 선발 유희관(27)이 25년 전 장호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유희관은 1일 잠실 삼성전에 선발로 나서 7⅓이닝 동안 5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4-0으로 앞선 8회초 1사 1루서 홍상삼에게 바통을 넘기고 물러났다. 직구 구속은 언제나 그랬듯이 빠르지 않았으나 안정적인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력이 돋보였다. 팀은 4-0으로 승리하며 유희관에게 8승(4패)째를 선물했다.
1회초 1사 후 정형식의 좌전 안타와 최형우의 중전 안타로 1,3루 위기를 맞은 유희관. 그러나 유희관은 박석민을 포수 파울플라이로 일축한 뒤 이승엽을 상대로 볼카운트 2-2에서 과감한 몸쪽 직구(134km)를 던져 스탠딩 삼진을 이끌었다. 이승엽을 서서 삼진당하게 한 장면은 이날 경기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을 만 했다.

1회 실책에 편승한 2득점까지 나오며 유희관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안타는 내줘도 집중타는 피하는 기교투가 이어지며 7회까지 무실점으로 디펜딩 챔프 타선을 막아냈다. 직구 최고 구속은 여느 때처럼 134km 정도에 그쳤으나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과의 조화가 워낙 뛰어났고 제구력도 시즌 중 가장 좋은 축에 속했다.
손은 다르지만 현재 유희관의 모습은 과거 장호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75cm 정도로 체구는 크지 않았고 직구 구속도 느린 편이었으나 과감하게 몸쪽 공을 던지고 안정된 제구력과 강한 배짱투로 타자를 상대했다. 1983년 데뷔한 장호연은 1995시즌 후 은퇴할 때까지 통산 109승을 올리며 배짱의 저속구 투수로 명성을 떨쳤다.
유희관도 크지 않은 체구에 사복 차림은 운동선수인지 착각하게 할 정도로 민간인스럽다. 그러나 안정된 제구력과 위기에서 크게 주눅들지 않는 좋은 성격을 지녔다. 여기에 각종 운동을 센스 있게 해내는 재능도 있다. 2군 훈련장인 경기도 이천 베어스 필드에서 오랫동안 합숙하던 시절 유희관은 뛰어난 탁구 실력을 보여주며 “탁구로 대표 선수 될 수도 있겠다”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주위에서는 ‘야구 빼고 다 잘하는 유희관’이라며 웃었다.
파이어볼러는 성공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다. 그러나 100%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이 빠르지 않더라도 안정된 제구력과 위기에서 떨지 않는 강심장. 그리고 성실함까지 더한다면 충분히 프로 투수로서 성공할 수 있다. 20여 년 전 장호연을 떠올리게 하는 유희관은 스스로 성공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
farinelli@osen.co.kr
잠실=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