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을 통해 앞날을 미리 내다본들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운명은 그저 속절없이 흐를 뿐이다. 입신양명의 시대에 각각의 욕망을 안고 주어진 인생의 한복판에 뛰어든 인물들의 파도처럼 부서지는 운명이 얄궂다.
2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관상’ 시사회가 열렸다. 뚜껑을 연 영화는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양대군(이정재)과 김종서(백윤식), 그리고 관상가 내경(송강호)의 운명을 묵직하게 담았다.
내경은 재야에 파묻혀 붓을 만드는 일로 연명하고 있지만 실은 관상을 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고수다. 그가 이 같은 삶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가 역모에 휘말려 집안이 풍비박산 났기 때문으로, 더 깊게는 아들 진형(이종석)이 관직에 나갈 경우 단명한다는 얼굴에 새겨진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런 내경에게 한양에서 기방을 운영하는 기생 연홍(김혜수)이 찾아오고, 관상을 통해 김종서 장군의 수하를 구한 일을 계기로 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다. 마침 병약한 문종(김태우)이 죽으며 어린 왕세자가 보위에 오르고, 호심탐탐 왕의 자리를 노리던 수양대군의 야욕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막아서려는 김종서 장군 사이의 대결로 정국은 소용돌이친다. 김종서 장군의 편에 선 내경은 수양대군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역심을 분명히 읽고 이를 막아서려 하지만, 관상이 미리 말해주는 운명의 길이란 속절없이 흐를 뿐이다.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특별한 시각을 부여하는 것 대신 왕권에 강한 욕망을 지닌 인물 수양대군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 역모 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역모상을 지닌 설정 외에 그가 왕권을 찬탈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으며, 내경과 팽헌(조정석)의 각고의 노력에도 역사는 역모로 귀결된다. 내경의 아들이 관상에 따라 관직에 나가 변을 당하는 것도 정해진 수순처럼 펼쳐진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순응해야 할 삶의 궤도에 대한 목소리가 영화 막바지 체념의 정서를 안고 쓸쓸하게 밀려든다.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 영화는 배우들 중에서 이정재가 단연 돋보인다. 수양대군을 연기한 이정재는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는 역모상을 지닌 인물로 설정됐지만 이를 품위 있게 드러내며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등장함에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반면 김혜수의 경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등장하지만, 분량이 짧은 것 외에 역할 면에서나 존재감에 있어서도 그리 인상적이진 않다. 이는 주인공 송강호 역시 마찬가지로, 그는 영화에서 관상으로 미래를 점지하지만 보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역할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139분 러닝타임에 15세 관람가다. 9월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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