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이 적게 터지는 축구경기에서는 비일비재하지만 비교적 다득점이 이루어지는 야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코어 ‘1-0’. 리드하고 있는 팀도, 끌려가고 있는 팀도 서로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살얼음판 스코어는 경기 내내 팬들의 애간장을 녹이곤 한다.
지난 8월 27일 잠실구장에선 10년만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가을야구를 넘어 내심 1위를 차지,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 LG와 사실상의 현대 인수 후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넥센간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펼쳐졌다.
그간 만날 때마다 엎치락뒤치락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접전으로 이어져 일명 ‘엘넥라시코’로 일컬어지는 양 팀간의 이날 대결 결과는 1-0.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스코어였다.

사실 1회초 넥센이 2사 2루에서 터진 박병호의 중전 적시타로 손쉽게 선취점을 뽑아냈을 때만해도 승부가 그대로 굳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넥센은 여러 차례의 고비에도 선발 나이트와 마무리 손승락의 역투를 바탕으로 야수들의 집중력과 빼어난 수비력 덕분에 1회초에 얻은 한 점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귀중한 1승을 추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향한 발걸음을 한 발 더 앞쪽으로 옮겨놓을 수 있었다.
통계수치상 이날의 1-0 승부는 올 시즌 5번째(9월 2일 현재 6차례 기록 중)이자 역대 317번째.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공교롭게도 넥센과 LG 모두 시즌 3번째의 1-0경기로서 각각 이전에 치렀던 2번의 1-0승부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고 맞붙은 1-0 스코어 경기의 진검승부였다라는 점이다.
LG는 SK(5월 26일)와 KIA(7월 25일)를 상대로, 넥센은 NC(4월 19일)와 KIA(5월3일)를 상대로 각각 두 차례씩 1-0 승을 따낸바 있는데, 또 하나의 흥미로운 내용은 넥센의 경우 1-0으로 승리를 거둔 3차례의 박빙 승리경기 모두가 박병호의 결승타로 장식되었다는 사실이다.
박병호는 NC전에서 9회말 끝내기 1점홈런을, KIA전에서는 5회 말 우월 1점홈런을 때려내 팀을 승리로 이끌며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준 바 있는데, 이날 LG전에서도 결승타를 친 선수로 기록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318차례(9월 2일 기준)의 1-0 승부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우선 산술적인 면에서 1-0승부를 만날 확률은 불과 2% 내외다. 지난해(2012년)까지 치러진 총 1군경기수는 1만4508경기로 기록된 312차례(2012년 종료기준)의 1-0 경기수를 나누면 2.2%의 탄생확률이 나온다.
아울러 1-0경기가 가장 많이 기록된 해는 1993년으로 총 20번의 살얼음 승부가 펼쳐졌다. 반면 가장 적었던 해는 프로 원년인 1982년으로 5월 26일 삼성-롯데전(삼성 1-0승)에서 권영호(삼성)와 노상수(롯데)의 완투 맞대결 속에 딱 1차례만 기록되었을 뿐이다.
또한 1-0경기는 아무래도 투수전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만큼, 한국프로야구를 거쳐간 많은 스타급 투수들의 전적이 가득 녹아 든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 1-0경기를 통해 가장 많은 희열과 아쉬움이 두루 교차한 투수는 단연 선동렬이다. 가공할 만했던 현역시절 그의 묵직한 구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총 13번의 1-0 승부를 경험했다. 이중 승리한 경기는 8경기(완투승 5번), 패전투수로 기록된 경기는 5경기(완투패 4번)였는데, 승패를 떠나 총 13차례의 1-0 승부에서 9번을 완투로 끝맺음 지었다는 사실은 그의 위력을 십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역대 압권이었던 해는 0점대의 평균자책점(0.99)을 처음 기록했던 1986년으로 부담스런 1-0경기의 완투승을 무려 3차례나 일궈내기도 했다. 선동렬 외에 한 시즌 3차례의 1-0 경기 완투승을 이끌어낸 투수로는 1995년의 김상진(OB)과 2007년의 리오스(두산)도 있었다.
승패를 떠나 한 시즌 1-0경기에서 가장 많은 승패를 경험한 투수로는 조병천의 이름이 보인다. 1988년 태평양 소속으로 4월~8월 사이 무려 5차례나 1-0 경기를 치러낸 이색기록을 갖고 있다. 전적은 2승 3패.
한편 선동렬과 더불어 불세출의 투수였던 최동원 역시 1-0 승부사에 묵직한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가 경험한 1-0 승부는 모두 10차례로 승과 패가 정확히 5:5로 갈렸다. 그중 완투승과 완투패는 3번과 4번으로 총 7번의 1-0 완투경기를 남겼다.
전설의 쌍두마차 선동렬과 최동원 외에 1-0 승부를 다수 겪은 기타 투수로는 윤학길과 정민태를 빼놓을 수 없다. 통산 100완투에 빛나는 윤학길(롯데)은 총 11번의 1-0승부에서 3승 8패를 기록하며 또 다른 불운의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완투는 총 9번으로 서열 3위. 여기에 선발 21연승의 정민태(현대)는 총 12번의 1-0승부에 6승 6패로 승률 5할을 남겼고, 이중 완투는 총 8번이었다.
그밖에 유일한 통산 200승 반열 투수인 송진우(한화)가 10차례(5승 5패), 1990년대 중반 OB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상진이 11차례(6승 5패), 장호연(OB)과 정민철(한화)이 각각 9차례, 김상엽(삼성)과 김진욱(OB)이 각각 8차례의 1-0 승부로 뒤를 잇고 있는데, 특히 눈길이 가는 투수는 김진욱(현 두산 감독)의 발자취다.
선동렬의 천적으로도 유명세를 탔던 김진욱은 총 8차례의 1-0경기(3승 5패)를 모두 완투로 장식하는 기록을 남겼다. 선동렬과의 1-0 승부 대결은 2승 2패로 수치상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만, 1989년 5월 4일과 6월 16일 김진욱은 선동렬과의 2차례 연속 1-0 승부 완투 맞대결(잠실구장)에서 2연승을 거둬 천적으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킨 바 있다.
이상의 이름난 투수들 외에 1-0 승부에서 가장 불운한 투수로 자리매김했던 선수로는 최창호(태평양)의 이름이 보인다. 그는 1989~1993년 사이 5차례의 1-0 승부에서 모두 완투패를 당한 바 있는데, 특히 1989년에는 한 시즌에 3차례나 1-0 완투패를 당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한껏 자아내기도 했다.
1-0 승부의 이면을 뒤집어보면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 투수들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특급 투수들의 숫적, 양적 부족으로 완투경기의 급감은 물론, 1-0 경기 빈도수 자체도 전에 비해 현격히 줄어드는 양상이다.
홈런이 야구의 꽃이고 치열한 타격전이 훨씬 보는 재미가 더하다고 하지만, 1점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양 팀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투수전은 경기의 질이나 긴장강도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 등급의 경기라는 점에서 1-0 승부가 좀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