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볼넷에 대한 공포다. 그러나 이를 알면서도 피해가기 힘든 게 또 볼넷이기도 하다. 류현진(26, LA 다저스)은 그런 측면에서 이 공포를 잘 극복하고 있다. 원동력은 “볼넷은 싫다”라는 강한 자기주문과 이를 뒷받침하는 담력 및 구위다.
류현진은 올 시즌 26경기 나서 13승5패 평균자책점 3.02의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의 에이스였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MLB) 첫 시즌에서 이런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벌써 167이닝을 소화했고 26경기 중 5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경기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꾸준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제 류현진 없는 LA 다저스의 선발진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류현진은 “후반기에는 처질 것”이라는 몇몇 의구심을 지워내고 시즌 막판을 맞이하고 있다. 류현진은 후반기 8경기에서 6승2패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하고 있다. 전반기(7승3패 평균자책점 3.09)보다 오히려 평균자책점이 더 좋다.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볼넷이다. 류현진은 후반기 50⅓이닝 동안 단 7개의 볼넷을 내줬다. 탈삼진/볼넷 비율이 6.57에 이른다.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기록이다.

류현진은 이 비결을 묻는 질문에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했다. “볼넷을 줘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볼넷은 자연스레 투구수를 불린다. 투수의 심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뿐더러 이를 지켜보는 야수들도 지치지 만든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류현진은 “차라리 안타를 맞는 것이 낫다. 볼넷은 주기 싫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31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도 이런 류현진의 강한 신념이 잘 드러난다. 류현진은 7회 선두타자 닉 헌들리와의 승부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류현진은 헌들리에게 연속 세 개의 볼을 허용했다. 볼 카운트 3B-1S. 누구든 신중한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변화구로 상대를 유인하기보다는 5구째 91마일 직구를 한가운데 던졌다.
이 공은 결국 좌전안타로 이어졌다. 그러나 류현진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류현진은 “볼넷을 주기 싫었다.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홈런을 준다는 생각으로 한 가운데 던졌다”라고 했다. 볼넷을 극도로 싫어하는 류현진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류현진의 강한 신념은 8월 한 달 동안 34개의 삼진과 4개의 볼넷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이어졌다. 피해가지 않는 류현진의 당당함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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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