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판 시점을 놓고 임창용(37, 시카고 컵스)로서는 오묘한 심정이 교차하고 있다.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팀이 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역사적인 메이저리그(MLB) 첫 경기를 치른 임창용은 그 후 2경기에서 등판하지 못했다. 몸 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임창용 스스로 “연투가 가능하다”고 자신할 정도로 몸 상태는 어느 정도 올라왔다. 하지만 ‘경기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다.
데일 스웨임 시카고 컵스 감독은 일단 임창용의 등판을 ‘지고 있는 상황’에 한정시켜 놓았다. 부담 없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라는 배려다. 사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컵스는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승리에 대한 압박이 그리 크지 않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MLB 첫 시즌을 맞이하는 임창용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여건이었다. 컵스가 상대적 약체라 이기는 상황보다는 지는 상황이 더 많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임창용이 승격한 이후 컵스의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컵스는 임창용의 승격 첫 날이었던 5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9-7의 역전승을 거뒀다. 임창용이 나올 만한 타이밍이 마땅치 않았다. 7일 밀워키전에서도 8-5로 이겼다. 초반부터 앞서 나가 임창용의 등판은 무산됐다. 9일 밀워키전에서는 1-3으로 졌지만 6회까지는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이날 경기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역전당한 통에 등판 타이밍을 놓쳤다.
신시내티 원정 첫 경기였던 10일 경기에는 선발 트래비스 우드가 7이닝 6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2-0으로 이겼다. 임창용보다는 기존부터 활용했던 필승조들이 먼저 부름을 받았다. 2-0으로 앞선 8회에는 장기적인 기대주인 페드로 스트롭이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책임졌고 9회에는 팀 마무리 케빈 그렉을 올려 임창용에게는 경기 끝까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임창용 승격 이후 컵스가 3승2패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한가닥 위안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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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