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에도 불이 붙었고, 악역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대체 왜 시청률에서만큼은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걸까.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극본 권순규 이서윤, 연출 박성수 정대윤)의 이야기다.
지난 10일 오후 방송된 ‘불의 여신 정이’에서 광해(이상윤 분) 왕자는 첫사랑 정이(문근영 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또 광해를 해하려 하는 인빈(한고은 분)과 그를 도와 왕 세자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임해(이광수 분)의 야심 또한 엄청난 계략으로 발전해 광해에게 위협이 됐다.
이날 광해는 백토를 구한다며 산으로 떠난 정이를 찾아 나섰다. 인빈의 사주를 받은 이강천(전광렬 분)이 행단에서 유통하는 백토를 마다하며 정이를 도성과 떨어진 먼 곳으로 보낸 것. 영문을 알 리 없는 광해는 하루 종일 정이를 찾아다녔고, 발을 다쳐 산 속에 앉아 있던 그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설레는 마음을 감춘 채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정이와 마음 속의 이야기를 하던 광해는 그에게 “나와 함께 도망치겠느냐. 가면 따위 벗어버리고 진심으로 위하면서 그리 살고 싶지 않느냐”라고 제안했다. 이어 “정이 넌 나의 첫 정이었고, 지금까지 내 가슴을 뛰게 한 사람은 오직 너 밖에 없었다”며 “정녕 몰랐느냐. 언제부턴가 너 뿐이었다. 차를 마시는 찻잔에도 글을 읽는 책 속에도 잠을 자는 꿈속에서도 눈을 떠도 감아도 온통 너뿐이었다. 그런데도 넌 정녕 몰랐단 말이냐”며 자신의 애타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이 같은 광해의 폭풍 고백은 진전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던 '불의 여신 정이' 속 로맨스를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기를 바랐던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장면이었던 것.
더불어 악역들의 활약도 더욱 규모가 커졌다. 인빈은 광해의 편지를 구해 전문가로 하여금 필사체를 베끼게 한 후 그가 스승이었던 대제학에게 '힘을 실어달라'라고 역모를 꾸민 것처럼 일을 만들어갔다. 또 선조(정보석 분)가 광해를 더 의심할 수 있게 정이를 미끼 삼아 그를 먼 곳으로 보냈다. 임해 역시 자신이 왕세자 자리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동생 광해를 해하기 위해 인빈과 결탁했다.
한고은, 이광수, 전광렬 등 '불의 여신 정이' 속 악역들은 표독스럽고 음흉한 인물들의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이들의 활약에도 '불의 여신 정이'의 시청률은 좀처럼 제자리걸음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시청률 답보 상태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예로 드는 것 중 하나는 몰입도가 떨어지는 전개 방식이다. 한 가지 사건을 그려낼 때 집중도 있게 그려내기 보다 이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뚝뚝 끊어지듯 연결하는 편집 방식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는 것. 지난 방송에서도 광해가 정이에게 고백을 한 직후 화면이 갑자기 인빈의 방으로 넘어가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경쟁작들의 색깔이 분명하다는 점도 '불의 여신 정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다. 같은 시간대 KBS 2TV '굿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아외과 의사와 그를 둘러싼 의료진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이야기며, '황금의 제국'은 하나의 회사를 놓고 혈연집단이 벌이는 치열한 가족 정치극을 그린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국내 드라마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황금의 제국'의 경우 고도의 심리전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점점 '미드'(미국 드라마)의 장점을 흡수해가는 국내 드라마의 트렌드와 맞다. 반면, '불의 여신 정이'는 전형적인 MBC 표 사극이다. 천재적인 여자(혹은 남자) 주인공이 역경을 헤쳐나가며 사랑과 일을 동시에 차지하는 내용인 것.
내용상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불의 여신 정이'는 총 32부작으로 이제 10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직까지 할 이야기는 남았고, 더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어찌됐든 '불의 여신 정이'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사극만의 강점이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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