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에는 불펜진을, 올 시즌에는 선발진을 만들었다. 내년 시즌에는 15승을 올릴 수 있는 토종 에이스를 만들겠다.”
지난 3일 LG 차명석 투수코치는 일찍이 내년 투수진의 과제를 ‘토종 에이스 만들기’로 정했다. 지난해 불펜 필승조를 구성한 것에 이어 올 시즌 선발진까지 구축, LG는 6월 초부터 팀 평균자책점 부문 1위를 사수했고 현재 순위표 정상에 자리 중이다. 언제나 그랬듯, 마운드가 가장 강한 팀이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 코치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LG가 진정한 ‘투수 제국’을 건설하려면 팀을 대표하는 토종 에이스투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봤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류제국(30)이다. 지난겨울 우여곡절 끝에 LG 유니폼을 입은 류제국은 올 시즌 LG 도약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5월 19일 1군 무대 데뷔전부터 선발승에 성공하더니 이후에도 꾸준히 승수를 쌓았고 LG는 질주를 시작했다. 류제국 합류 전까지 LG 성적은 14승 20패 승률 4할1푼2리에 불과했지만, 류제국이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된 후 LG는 52승 26패 승률 6할6푼7리의 기적을 만드는 중이다. 류제국은 12일 잠실 KIA전서 9승에 성공, 10승 달성을 눈앞에 둔 상태다.

물론 류제국 한 명의 활약으로인해 LG가 지난 10년의 암흑기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류제국은 에이스의 조건인 ‘선발 등판 = 팀 승리’ 공식을 세웠다. 류제국 선발 등판시 14승 3패로 승률이 82.3%에 달한다. 간단히 말해, 류제국은 상대 타자들에게 리드를 내주지 않고, LG 타선은 폭발한다. 류제국의 평균자책점 3.98과 류제국 등판시 9이닝 기준 약 6.5점 가량을 뽑고 있는 타선의 기록을 대입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류제국은 리그 최정상급의 커브와 체인지업, 내야 땅볼 유도에 용이한 투심패스트볼을 구사한다. 올해 퓨처스리그부터 류제국과 호흡을 맞춘 포수 윤요섭은 “변화구가 정말 좋더라. 무엇보다 경기를 할 줄 아는 투수였다. 한국야구에 적응만 한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 바 있다. 윤요섭의 말처럼 류제국은 단순히 구위가 좋은 것에 그치지 않고,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마운드를 운용한다. 접전 상황과 리드하고 있는 상황의 투구 패턴이 판이하게 다르며, 상대 타자가 출루하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위기를 탈출한다. 스스로 “실점 위기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주자가 꽉 차 있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 같다”고 한다. 실제로 류제국은 지금까지 15번의 만루 상황서 안타 하나 만을 허용, 만루시 피안타율 7푼1리를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시즌 중에도 류제국의 기량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프링캠프도 치르지 않았고, 지난 4년 동안 실전 등판 경험이 전무함에도 후유증 없이 순항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투구 밸런스가 흔들릴 때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패스트볼 구속이 올라가고 있다. 12일 잠실 KIA전에선 포심패스트볼 최고 구속 150km를 찍으며 한국 무대 복귀 후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고교시절과 마이너리거시절 최고구속 157km 포심패스트볼과 152km 투심패스트볼을 뿌렸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에 대해 류제국은 “오랜만에 150km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두 번 150km 찍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경기에 여러 번 150km를 기록, 강속구를 다시 내 것으로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11년 만에 한국 무대에서 뛰고 있는 것을 두고 류제국은 “역시 야구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방황했던 20대를 지나 만 서른 살에 야구의 재미를 다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초특급 유망주 대우를 받고 시카고 컵스에 입단, 또 한 명의 ‘코리안 특급’이 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류제국의 20대는 고난 그 자체였다. 부상과 수술, 트레이드 등 사건 사고 속에 ‘아메리칸 드림’ 앞에 놓인 벽은 높고 험난했다. 그래도 그만큼 성숙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지난겨울 처음으로 LG 유니폼을 입고 2군 캠프에 합류, “미국에 갔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온 만큼, LG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어 팀을 이끌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자신감을 되찾은 류제국은 이제 포스트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야구를 4년이나 쉬었는데도 성적이 나고 있다. 그만큼 올해는 나 자신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 개인적인 목표가 해외파 첫 해 징크스를 깨는 것이었는데 목표를 달성해서 마음이 편하다”며 “포스트시즌 무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즐거울 것 같다. 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너리거때에도 포스트시즌은 유독 즐겁게 치렀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결정하실 부분이지만 만약 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한다면, 영광스럽게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겠다”고 올 시즌 마지막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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