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꺼이꺼이 서럽게 운다. 가슴 깊은 곳에서 폭발하는 그 복잡한 감정들이 다양한 얼굴 주름으로 표현되고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은 모습에서 깊은 절망이 드러난다. 그런데 예쁘다. 그 처절한 오열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공효진이기 때문일까.
SBS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공효진 분)이 주중원(소지섭 분)의 죽음을 대하고 서럽게 울었다. 지난 12일 방송분 말미에는 태공실을 구하기 위해 대신 흉기를 맞았다가 죽음을 맞는 주중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태공실은 아이를 차 사고로 죽게 한 뒤 시신을 은닉하고 있던 범인을 찾아냈다. 범인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태공실마저 해치려했고 태공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범인과 사투를 벌이던 순간, 태공실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주중원은 흉기를 들고 달려든 범인에 맞서 몸을 날렸다. 태공실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주중원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장면이 바뀌고 수술을 기다리던 태공실의 앞에는 귀신이 된 주중원이 나타나 "사랑해"라는 고백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이 장면에서 돋보인 것은 태공실의 오열. 이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랑을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비극으로 들어선 분위기. 태공실은 자신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주중원의 마지막 인사가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자신 앞에 귀신이 되어 나타난 주중원, 이 참담한 광경 앞에 태공실은 서러운 눈물이 폭발했다.
자신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가 불행해진 것 같은 죄책감, 살아서는 다신 그를 볼 수 없다는 절망 등 복잡한 감정이 얽혀 태공실의 눈물은 서럽고도 뜨거웠다. 그의 오열에 보는 시청자들까지 그 절망스러운 상황을 함께 흐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
공효진의 빛나는 연기력은 이날 '주군의 태양'의 백미로 꼽힐 만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린 채 오열하는 모습이 압권. 여느 여배우들처럼 눈물 한 두 방울 흘리며 팽팽한 얼굴을 유지하려는 노력 따윈 없었다. 눈가부터 입가까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눈물도 끝없이 흘렀지만 공효진은 예쁘게만 보였다. 민낯과 다름 없는 얼굴에 피어난 주름과 얼룩진 눈물 자국이 태공실의 복잡하고 절망스러운 내면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었다.
공효진은 어느 작품에서나 망가짐을 불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호평받는 배우다. 캐릭터를 살릴 수 있다면 민낯도 험한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 여배우. 이날 역시 화면에 예쁜 얼굴보단 시청자들에게 솔직한 얼굴로 오열한 그의 연기가 안방의 심금을 울렸다. 공효진의 프로 의식이 만들어낸 '주군의 태양' 명장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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