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지난 10년은 너무 어두웠다. 2002시즌 기적 같았던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깊은 부진에 빠졌다. 결정적인 원인은 마운드였다. 투수진 붕괴로 인해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치욕을 느껴야했다.
2003년 LG에 입단한 사이드암 투수 우규민(28) 역시 팀의 부진과 함께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우규민은 2006시즌 프로 4년차 만에 특급 불펜요원으로 도약, 시즌 중 마무리투수 자리까지 꿰차며 17세이브 평균자책점 1.55으로 붙박이 1군 투수가 됐다. 이듬해에는 풀타임 마무리투수로 30세이브 고지도 밟았다. 그러나 당시 우규민에 대한 평가는 저조한 팀 성적과 함께 냉혹했다.
“2007년에 30세이브를 했지만 칭찬보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LG가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 때 블론세이브도 13개나 했다. 전반기까지는 괜찮았는데 후반기에 안 좋았다. 블론세이브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2007시즌 9월까지 4위권 경쟁을 펼쳤던 LG는 2008시즌 46승 80패로 최하위, 2009시즌도 54승 75패 4무로 7위에 자리했다. 우규민 또한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다. 마무리투수 자리에서 밀려났고, 급기야 팀을 구원하지 못하는 ‘구원투수’가 되고 말았다. 전도유망했던 사이드암 투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순간이었다.
“투수도 상대 타자들을 연구하지만, 타자들 역시 투수들은 연구한다. 솔직히 당시에 나는 상대방을 연구하는 부분이 부족했다. 구위가 빼어나거나 스피드가 많이 나오는 투수가 아님에도 상대 타자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우규민은 변화를 택했다. 2009시즌을 마치고 경찰청에 입대, 2년 동안 군복무에 임했다. 경찰청에서 ‘마무리투수=우규민’이란 공식을 깨뜨리겠다는 다짐 하에 선발투수 전향을 계획했다. 프로 입단 후 환희보다 아픔이 많았기에 한 발 물러선 곳에서 재도약을 꿈꿨다. 그리고 우규민은 2011시즌 퓨처스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발돋움, 반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군인 신분이고 퓨처스리그니까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경찰청에 입대하면서 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보자고 다짐했고 선발투수를 자원했다. 다행히 경찰청 유승안 감독님께서 잘 받아주셨다. 2년 동안 유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조언도 많이 받았다. 군복무를 마칠 무렵, LG로 돌아가면 선발투수가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우규민의 다짐은 적중했다. 2012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프로입단 후 최다 이닝인 92⅔이닝을 소화했고 4승 4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3.30으로 맹활약했다. 특히 6월 16일 군산 KIA전에서 1군 무대 첫 선발 등판에 임해 7이닝 비자책점 호투로 깜짝 선발승도 거뒀다. 하루 전 선발 등판 통보를 받았는데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후 우규민은 2경기 더 선발 등판한 후 마무리투수 봉중근의 이탈로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후반기 평균자책점 1.62으로 철벽을 이뤘고 2013시즌을 앞두고는 풀타임 선발투수로 내정됐다.
“빨리 경기를 끝내겠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야수들이 지치지 않게 빠르게 승부하겠다. 그래야 호수비도 나오고 공격에서 타자들도 잘 친다. 2군에 있을 때 낮 경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확실히 투수가 마운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야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목표는 프로야구 최단시간이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던질 것이다. 몇 승을 올리거나 몇 이닝을 소화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굳이 잡자면 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것이다.”
목표는 곧바로 이뤄졌다. 2013시즌 첫 선발 등판인 3월 31일 문학 SK전부터 승리를 따냈고 4월 14일 대전 한화전에선 통산 첫 완봉승까지 거뒀다. 당시 LG 타선이 폭발하며 최단시간 경기에는 실패했지만, 한화가 공격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규민은 시즌 전 LG 토종 선발진에 붙었던 커다란 물음표를 단숨에 느낌표로 바꿔버렸다. 140km 후반대의 직구는 없지만 리그에서 가장 적은 볼넷(9이닝당 1.81개)을 기록, 안정된 제구력과 수준급 경기운영 능력으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13일 잠실 KIA전에선 에이스 투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선발 10승도 거뒀다. 이전 선발 등판에선 부진했지만 곧바로 페이스를 찾아 팀 승리를 이끌었다. 8월 2일 승리투수가 된 후 7경기, 약 40일 만에 10승 고지를 밟은 것이다. 아홉수도 겪었지만 프로생활 11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시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우규민은 이번 10승이 향후 자신의 선발투수 인생에 있어서는 1승에 불과하다고 했다.
“투수라면 아홉수라는 것을 겪을 수 있는데 그동안 스트레스를 좀 받은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선발승을 챙기는 것 보다는 팀이 이기는 데에만 신경 썼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첫 시즌인데 지금까지 목표로 삼았던 로테이션 유지를 이루고 있어 기쁘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더 배워가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10승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제 1승이라 생각하겠다.”
이제 우규민은 포스트시즌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팀이 지독한 암흑기에서 탈출하는데 큰 힘을 보탰고 그만큼 자신감도 찾았다. 우규민의 올 시즌 마지막 목표는 LG가 1위 자리를 유지하고 마지막 경기서 승리해 정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올해가 프로 11년 중 최고의 시즌이다. 단순히 나만 잘한 게 아닌 팀 전체가 하나로 뭉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예전에 마무리투수를 할 때 소원은 포스트시즌서 마무리투수로 등판하는 것이었다. 이제 선발투수인 만큼, 선발투수로 치를 포스트시즌이 기대된다. 그만큼 시즌 마지막까지 몸 관리 잘해서 가을잔치서도 팀에 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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