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황금' 장태주, 인간 고수로서는 감당 안 돼"[인터뷰]
OSEN 선미경 기자
발행 2013.09.16 07: 10

작은 얼굴에 큰 눈과 오뚝한 코, 그리고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배우 고수(35)는 '고비드'라는 별명에서 느낄 수 있는 조각 같은 외모와 부드러운 매너를 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눈을 맞추고,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펼쳐놓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크고 깊은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 진중하면서도 가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미소도 잃지 않았다. 많은 여성들이 그를 이상형으로 꼽는 이를 알 수 있었다.
자상하고 부드럽고 잘생긴, 고수는 그의 이런 이미지를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으로 완전히 깨버렸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황금의 제국' 속 장태주는 강한 충격이었다. 성공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신념과 연인까지 버릴 정도로 강학 욕망에 휩싸인 인물. 이 작품에서 고수는 부드럽고 자상한 이미지를 버리고 날카롭고 무서운, 장태주라는 인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황금의 제국'은 지난해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를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PD, 그리고 배우 손현주 등이 다시 한 번 뭉친 작품. 뿐만 아니라 고수가 지난 2009년 SBS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이후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하는 작품이라 많은 기대를 받았다. 기대만큼 반응도 좋았다. 시청률을 떠나 '황금의 제국'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모두 배우들의 연기와 매회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 긴장감 넘치는 연출을 좋게 평가했다.

"24부작은 처음 했는데 한 번도 밤샘 촬영이 없었어요. 살인적인 스케줄도 아니었고, 기분 좋게 촬영했어요. 드라마의 기획의도나 줄거리, 인물의 색깔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잘 끝나게 돼서 좋아요"
오는 17일 종영하는 '황금의 제국'은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격동기 제왕자리를 두고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쟁탈전을 그린 가족 정치극. 매회 반전을 거듭하며 제왕자리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배우와 스태프 역시 그때그때 나오는 대본을 봐야 알 수 있었다.
반전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작가의 빈틈없는 대사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고전 문학 등을 인용해 어떤 상황에도 기막히게 들어맞는 명대사가 줄을 이었다. 경제용어 등 배우들이 외워야하는 대사의 양은 많았지만 섬세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대사는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또 배우들 입장에서는 세트촬영이 많아 편안한 점도 많았다. '황금의 제국'은 야외촬영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장면이 극중 성진그룹 집안이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전개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빈틈없는 대사로 채워나갔다.
"사실 대사 NG가 많이 나요. 대사에 신경 써서 연기를 하고,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못하면 안 되니까. 현장에서 바로 나오는 대본을 찍으려면 컨디션이 좋아야 해요. 쉴 때도 조절을 잘해야지 잠을 못자거나 하면 현장에서 망해요(웃음). 대사로 스토리를 끌어나가는데 집중력 면에서는 세트촬영이 좋은 것 같아요"
"'세트드라마'라는 작가님만의 장르가 생길 것 같아요. (대사는)저도 어려웠어요. 생소한 단어들도 많고 외우는 것도 힘든데 분위기 자체도 무겁고.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굉장히 매력이 많은 작품이에요.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문학적이고요. 고전 같은 연극하는 느낌이었어요"
탄탄한 대사와 연출 말고도 고수와 손현주를 비롯해 배우 이요원, 김미숙 등의 연기대결 역시 드라마를 이끈 중요한 힘이다. 황금의 제국을 차지하려고 서로 거래하고, 배신하고, 싸우는 네 사람의 대결은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이어지고 있다.
"장태주라는 인물이 착한모습과 나쁜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욕하다가도 공감이 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일단 가상의 인물이니까. 배우 고수 말고 인간 고수라고 생각했을 때는 저도 감당이 안 되는 인물이죠. 정말 상상할 수도 없어요"
"각 캐릭터가 정말 정확해요. 말투나 감정이나 자세가 다 달라요.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비꼬는 것도 그렇고 속과 다른 말을 하는 것도. 드라마니까 해보죠(웃음)"
고수와 손현주, 이요원과 김미숙의 대결은 주로 성진그룹 집안의 식탁, 혹은 티테이블에서 이뤄졌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속내를 감추고 상대방을 헐뜯고, 욕하고 비꼰다. 극중 유일하게 성진그룹 출신이 아닌 고수는 이 장면을 가장 어려워했다.
"그 식구들은 서로 친한 것 같아요. 왠지 그 식탁에 앉으면 인사정도만 하고 말은 많이 주고받지는 않았어요. 화기애애하다가 갑자기 감정 잡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저는 식탁신이 가장 어려웠어요. 그 그룹에 들어가 식탁에서 태주는 정말 외부인 취급을 받잖아요. 다들 벌레 보듯이 하고요. 태주도 함께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래로 있는 거고요"
'황금의 제국'은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종종 있다. '추적자'의 그림자가 컸고, 큰 기대를 받은 만큼 월화극 1위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KBS 2TV '굿 닥터'에 밀려 현재 2위 자리다. 그러나 고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요즘 시청률은 판단하는 잣대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는 조사 가구 수도 적다고 하고, 연연해하지는 않아요. 좁은 생각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니까 그게 오히려 체감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캐릭터와 연극을 한 것 같은 독특한 방식, 그리고 좋은 반응만큼 이번 작품은 고수에게 특별하게 남았다. 물론 고수의 팬들에게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황금의 제국'은 확실히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느낌이다.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작품적으로도 너무 좋았고, 인간의 내면을 흉악함과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구조와 인물들을 보여줬기 때문에 자부심도 있고, 오래 좋은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을 하는데 힘이 될 것 같아요"
'황금의 제국'으로 좋은 기억과 연기인생의 특별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고수. 데뷔 16년차인 그는 지금도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늘 시작인 것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도 삶과 함께 가고 싶다는 고수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늘 지금도 처음인 것 같고, 시작인 것 같고, 고민하고 그래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 내가 사는 것처럼 삶과 연기는 함께 간다고 생각해요. 머물지 않고 늘 고민하는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제 시작이죠. 이번 드라마는 무겁고, 인상을 쓰면서 했는데 다음에는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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