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팀의 역사를 말하기도 하고 선수의 경력을 증명하기도 한다. 때로는 선수의 인기와 가치를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높은 인기를 가진 선수들은 유니폼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류현진(26, LA 다저스)의 달라진 위상도 여기서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올 시즌 LA 다저스의 비어 있던 ‘99번’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몇몇 의구심에서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상을 선보이고 있다. 올 시즌 27번 선발 등판해 13승6패 평균자책점 3.07의 성적을 내며 다저스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시즌 초반 팀이 부진했을 때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함께 선발진을 지탱한 것은 현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류현진의 활약에 인지도 또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사실 4월 말까지만 해도 다저스 팬들에게 류현진은 낯선 존재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류현진은 신문에서의 소개로 얻은 정보가 전부인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루키였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팬들이 가장 큰 박수를 보내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신인왕 레이스를 벌인 이제 류현진은 다저스를 넘어 전 메이저리그 팬들이 그 존재감을 인정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유니폼 판매에서도 이런 위상은 드러난다. 지난 7월 미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메이저리그 선수 전체의 유니폼 판매 순위를 보도했다. 류현진은 야시엘 푸이그에 이어 팀 내 2위, 그리고 리그 전체에서 무려 11위였다. 간판스타들인 맷 켐프(14위)와 클레이튼 커쇼(15위)를 제치는 대업(?)이었다.
정확한 판매 수량은 비공개로 했지만 류현진의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이야기는 다저스 구단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류현진의 유니폼은 4월 중순까지는 시중에 풀리지 않았다. 제작 단계를 거쳐 4월 말부터 소수 물량이 다저스타디움 팬샵에 나오기 시작했다. 당초 다저스 구단은 류현진 유니폼에 대한 팬들의 수요를 적게 잡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은 주문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다저스 홍보팀 관계자의 회상이다.
그러나 류현진의 유니폼이 팬샵에 풀리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다저스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다저스 국제 마케팅 담당자인 마틴 김은 “담당 부서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유니폼이 많이 팔려 2차 주문을 해야 했다. 2차 주문 때는 1차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주문했다”라고 떠올렸다. 류현진 유니폼의 정가는 225달러(약 24만4000원). 결코 싸지 않은 금액임에도 팬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아직 류현진 유니폼을 구매하는 주 고객들은 한인들이나 교포들이라는 게 판매 직원들의 귀띔이다. 사실 여러 인종과 문화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다저스에서 모든 계층의 팬들을 사로잡는 스타는 커쇼나 켐프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 하나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류현진이 직접 입었던 유니폼을 구매하려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인들도 많지만 야구 마니아들이 수집의 목적으로 류현진의 용품들을 노리고 있다.
다저스타디움 3층에 위치한 ‘더 아트 오브 더 게임’은 선수들이 실제 사용했던 유니폼이나 용품들을 팔고 있다. 주로 간판 스타 선수들의 용품을 주로 파는데 류현진은 다저스의 스타 선수들과 함께 이 대열에 당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류현진의 유니폼은 7500달러(815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커쇼나 푸이그의 유니폼과 가격은 비슷하다. ‘프리미엄’에서 두 선수와 똑같은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5층에 위치한 비슷한 성격의 샵에서도 류현진의 유니폼이 커쇼, 그레인키, 라미레스, 켐프의 유니폼과 함께 당당히 전시되어 있었다. 오히려 류현진의 유니폼이 가장 잘 보이는 가운데에 있다. 이 샵을 운영하는 듀필씨는 “류현진이 경기 중 사용한 공은 100달러(10만8000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들어오자마자 나가는 경우가 많다. 류현진이 사용한 배트는 300달러(32만5000원) 정도 한다”라고 했다.
듀필씨는 수많은 선수 중 류현진의 유니폼이 가운데 걸린 것에 대해 “유니폼은 매우 비싸다. 일주일에 몇 벌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류현진의 유니폼은 상대적으로 잘 팔린다”라고 했다. 평범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이어 “처음에는 한국팬들이 사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 류현진이 더 잘하면 이 유니폼은 나중에 더 높은 가격이 된다. 수집하는 사람에게도 류현진의 루키 시절 유니폼은 큰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인들 만의 류현진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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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