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벌써 스물아홉인데…"
한화 언더핸드 투수 정대훈(28)은 어색하게 웃었다. 기쁘지만 쉽게 내색을 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16일 대전 KIA전에서 4회 두 번째 투수로 구원등판, 2⅓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 무실점으로 막고 한화의 9-6 승리를 견인하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이는 지난 2008년 데뷔 후 6시즌-27경기 만에 거둔 정대훈의 프로 첫 승이었다.
경기 후 만난 정대훈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이전까지 통산 3홀드를 기록한 게 전부였던 그에게 승리는 기분 좋지만 낯선 경험이었다. 정대훈은 "내 나이 벌써 29살인데 이제야 첫 승을 했다"며 머리를 긁적인 뒤 "별다른 것 없다. 그동안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가 첫 승을 올리기까지도 적잖은 사연이 있었다.

경남상고-동의대 출신으로 지난 2008년 2차 5번 전체 39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정대훈은 몇 안 되는 정통 잠수함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운이 그를 덮쳤다. 2년차 시즌이었던 2009년 여름 빗길에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중상을 입었다. 시즌 아웃은 물론이고 청운의 꿈이 그대로 끝나나 싶었다.
정대훈은 "떠올리기 싫은 때"라고 했다. 그는 "그때는 말이 재활 선수이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야구 인생이 끝나는줄 알았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큰 사고에도 구단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곧바로 경찰청 입대를 추진했고, 재활을 마친 후 2년간 퓨처스리그에서 가장 많은 87경기를 던져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야구 인생은 그의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1군에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2군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는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조금씩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1군보다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12일 그는 다시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정대훈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올해 1군보다 2군 서산에서 더 오래 있었다. 그게 죄송해서 1군에 올라간 것도 부모님께 며칠 전에야 이야기했다"고 털어놓았다.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친 아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데뷔 첫 승과 함께 이제야 기대에 보답을 했다.
정대훈은 "오랫동안 부모님이 고생하셨는데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린 것 같아 기쁘다. 그동안 계속 운동하느라 추석 때 찾아 뵙지 못했는데 좋은 선물을 드린 것 같다"고 했다. 정대훈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눈시울이 촉촉히 젖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첫 승의 기쁨보다 다음 기회가 다시 주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만큼 앞으로도 꾸준하게 계속 잘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우리나이 서른을 앞두고 이제야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린 정대훈. 그의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화는 박정진·추승우·이양기 등 늦깎이 스타들이 유독 많은 팀이다. 그들에 비하면 정대훈은 전혀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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