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에서 보이는 그물망에 걸린 ‘괴물체’는 밤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이 아니다. 아주 유감스럽게도 대형 쓰레기통이다.
1985년 5월 1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렸던 해태 타이거즈-OB 베어스의 경기 도중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해태 응원 관중들의 난동 와중에 누군가 던진 구장 비치용 대형 쓰레기통이 내야 그물망에 걸린 것이다. 당시 서종도 기자(고인)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이 사진은 과격한 관중 난동의 증거물이다.
‘갈대’, ‘농무’ 등의 시로 유명한 신경림 시인은 ‘스포츠와 애향심’(1988년 수필집 에 실려 있음)이라는 수필에서 ‘최근 프로야구경기장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관중들이 홈팀이 지기라도 하면 상대편 선수들을 향해 돌이나 빈병을 던지기를 예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도 선수들이 덕 아웃에 갇혀 있다가 경찰버스에 실려 겨우 숙소로 돌아가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심한 경우 몇 대의 승용차가 불태워지기도 하고, 응원단은 데모대로 변해 스크럼을 짜고 경찰들과 싸우다가 사과탄에 의해 가까스로 해산되기도 한다.’고 개탄했다.

신경림 시인은 ‘사람이란 자기가 태어난 곳,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애착이 강한 법이어서 제 고장과 연고가 있다면 아무래도 더 흥미를 갖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성공하고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채택된 프로야구의 지역 연고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질의 하나인 지역감정을 건드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이 소동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1980~1990년대 프로야구 경기장에서의 관중 난동은 신경림 시인의 글처럼 비뚤어진 애향심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985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첫 날에 벌어진 관중난동도 지나친 애향심의 작동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 날, 밤 경기로 열린 해태-OB전 7회 말 7-2로 앞서 있던 OB 공격 때 대타로 나선 구재서가 중견수 앞에 총알 같은 타구를 날렸다. 해태 중견수 김준환이 앞으로 달려 나와 그 타구를 잡았다.
그 순간, 최화용 2루심이 원바운드로 잡았다고 안타로 판정하자 김준환이 강하게 항의했다. 당연히 해태 김응룡 감독도 따졌다.
그 장면에서 3루 쪽 관중석에서 해태를 응원하던 관중 4000여명이 흥분, 그 중 일부가 병이나 깡통, 심지어 대형 쓰레기통을 그라운드에 마구 던졌다. 위협을 당한 그라운드의 양 팀 선수들은 덕 아웃으로 일제히 피신했다.
소동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관중 난동은 무려 1시간가량 계속됐다. 관중들은 고함을 질러대며 그라운드에 오물 따위를 투척했다. 급기야 중부경찰서에서 경찰들이 출동해서야 사태가 겨우 스습됐다.
그 경기는 1시간 5분이 지난 밤 9시 25분에야 속행할 수 있었다. 경찰은 난동자 7명을 붙잡아 5월 2일 즉심에 넘겼다. 1985년 시즌 들어 두 번째로 일어난 큰 소동이었다.

그에 앞서 해태 응원관중들은 4월 24일 광주구장에서 열렸던 OB-해태전에서 OB선수들을 향해 빈병 등을 마구 던지며 소란을 피웠다. 그 난동의 와중에 제지하던 경찰에게 상해를 입힌 관중 두 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일도 일어났다.
4월 24일과 5월 1일 두 경기는 공교롭게도 OB가 7-2로 이겼다. 계형철은 4월 24일 선발승에 이어 5월 1일에는 8피안타 2실점 완투승을 거두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둥근 달 대신 동대문구장 내야 그물망에 걸린 대형 쓰레기통
항의하는 해태 김응룡 감독과 OB 김성근 감독의 모습. 표정이 대조적이다. (제공=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