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뺨치는 선구안, 류현진 생각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9.17 14: 09

리드오프라는 개념은 주로 1번 타자를 지칭하지만 경기를 세세히 쪼개보면 선두타자도 엄연히 리드오프의 임무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출루가 우선이다. ‘투수’ 류현진(26, LA 다저스)이 그 임무를 충실히 하며 다저스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류현진은 17일(이하 한국시간)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며 아쉽게도 시즌 14승은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완투패를 기록했다. 지난 12일 자신에게 시즌 6패째를 안긴 애리조나의 똑같은 라인업을 상대로 호투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류현진도 경기 후 “다른 날보다 좋았다”고 긍정적인 부분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잘 던진 경기였다. 1회 골드슈미트에게 내준 홈런 한 방이 뼈아팠을 뿐이었다. 돈 매팅리 감독은 “훌륭한 투구였다”라고 칭찬했다. 한편 타석에서도 시즌 2번째 볼넷과 시즌 5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애리조나에 강한 방망이를 재확인했다. 류현진은 올 시즌 애리조나를 상대로 이날 경기 전까지 타율 6할2푼5리(8타수 5안타), OPS 1.625의 엄청난 집중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날도 그런 감은 살아있었다.

첫 타석에서 풀카운트 승부 끝에 아쉽게 삼진으로 물러난 류현진은 팀이 0-2로 뒤진 6회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전까지 다저스는 13명의 타자가 케이힐로부터 안타 혹은 볼넷을 얻어내지 못하며 꽁꽁 묶여 있었다. 이런 답답한 흐름을 깬 이가 바로 류현진이었다. 침착한 선구안으로 바탕으로 케이힐을 괴롭히며 볼넷을 얻어냈다.
류현진의 방망이를 경계한 탓일까. 케이힐은 첫 타석부터 류현진과 어려운 승부를 펼쳤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변화구로 류현진의 방망이를 끌어내려고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이에 속지 않았고 6회 볼넷을 얻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바깥쪽 빠지는 공에 반응하지 않은 류현진은 먼저 2S를 허용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결국 볼넷을 얻어냈다. 현지 중계진도 “류현진이 볼넷으로 리드오프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고 칭찬했다.
투수에게 내준 볼넷은 마운드 위의 투수에게 심리적 타격을 입힌다. 케이힐도 마찬가지였다. 케이힐은 푼토에게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내줬고 이어진 타자 마크 엘리스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초래했다. 제구가 안 잡히는 경향이 역력했다. 그리고 1사 후 결국 푸이그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3루 주자 류현진의 득점을 허용했다. 애리조나 벤치는 케이힐을 예상보다 더 빨리 강판시켰다. 다저스 킬러 케이힐을 흔들어 놓은 류현진이었다.
다만 류현진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류현진은 경기 후 두 차례나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것에 대해 “상대가 피해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라면서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잘해야 한다. 타석은…”이라고 웃으며 말을 흐렸다. 내심 완투패, 그리고 하나의 실투가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이 이날 다저스의 유일한 득점을 올렸다는 점에서 공·수 양면의 맹활약은 돋보인 날이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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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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