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어깨의 힘에서 나오는 구위도 중요하지만 제구가 동반되지 않는 구위는 보통 힘을 잃기 마련이다. 류현진(26, LA 다저스)의 생각도 같았다. 자신을 상대로 좋은 타격을 한 애리조나 타선을 꽁꽁 묶을 수 있었던 원동력도 그 평범한 진리에서 나왔다.
류현진은 17일(이하 한국시간)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동안 단 안타 2개만을 허용하며 2실점으로 호투했다. 비록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완투패의 멍에를 썼지만 허리 통증에 대한 우려감을 싹 날려버리는 투구였다. 현지 언론과 돈 매팅리 LA 다저스 감독에게 “류현진은 건재하다”라는 것을 알리기 충분했다.
사실 걱정이 된 부분도 있었다. 류현진은 올 시즌 애리조나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직전 경기였던 12일 경기에서도 6이닝 동안 10개의 안타를 맞았다. 3실점으로 막긴 했지만 전반적인 내용이 좋았던 경기는 아니었다. 이 좋은 기억 때문에 애리조나는 17일 경기에서도 12일 경기와 똑같은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선발투수를 제외하면 타순과 수비 위치가 모두 똑같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12일과는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1회 골드슈미트에게 맞은 2점 홈런을 제외하면 나머지 이닝에서는 철벽의 이미지였다. 12일 류현진을 잘 공략했던 애리조나 타선은 8회까지 안타 2개를 뽑아내는 데 그쳤다. 분명 무언가 달라져 있었고 류현진이 말하는 그 다른점은 제구였다.
직구 구속은 큰 차이가 없었다. 최고 93마일(150㎞), 그리고 평균 90마일대 초반이었다. 변화구 구속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독 오른 애리조나 방망이를 똑같은 구속으로 잠재웠다. 비결은 거의 완벽한 제구였다. 이날은 높게 형성되는 공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스트라이크존 근처에서 움직였다. 12일 경기에서 실투, 그리고 제구가 안 된 변화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었던 애리조나 타선이 당황하기 충분한 제구였다.
류현진은 12일 경기 후 많은 생각을 했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경기 복기를 충실히 한 류현진은 자신의 경기는 물론 “애리조나 타자들이 왼손 투수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유심히 봤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범한 사실에서 결론을 찾아냈다. 류현진은 “답은 딱 하나더라. 낮게 던지는 것밖에 없었다”라고 미소 지었다.
투수에게 “낮게 던지라”라는 주문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는 말이다. 연습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투수들은 이 주문을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실전에 들어가면 다르다. 그것이 되는 투수와 안 되는 투수로 극명하게 나뉘고 이는 좋은 투수와 그렇지 않은 투수를 갈라놓는다. 그만큼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류현진은 정확한 진단을 처방으로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투수다. 그리고 이를 실전에서 증명했다. 괴물이 두 번 실패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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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