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 엘리스, 머리 쥐어뜯은 사연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9.19 07: 49

LA 다저스의 주전 포수 A.J 엘리스(32)는 신사다운 면모를 유지하는 선수다.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많지 않다.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선 대기만성형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엘리스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을 선보였다. 너무나도 심각했고, 너무나도 힘든 모습이었다.
바로 류현진(26)의 선발 등판일이었던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체이스필드의 원정팀 클럽하우스에서 있던 일이었다. 다저스 선수들이 카드 게임과 농담을 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그 상황, 엘리스는 홀로 테이블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수많은 A4 용지가 놓여 있었다.
엘리스는 포수다. 경기 전 상대 타자들에 대한 분석은 필수다. 어떤 구종을 좋아하는지, 어떤 코스를 조심해야 하는지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거의 다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비디오 영상을 돌려보며 방심을 경계하는 성실한 선수다. 그런 엘리스가 경기 전 노트북과 씨름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은 더 진지했다. 평소에는 조용히 비디오 클립을 응시한다면 이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해답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언론 인터뷰에도 친절하게 응대하는 엘리스지만 이날은 아무도 엘리스 옆에서 말을 걸지 못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무거웠다. 엘리스의 시선은 류현진의 직전 등판(12일 경기) 당시 애리조나 타자들의 타격 장면을 모은 비디오 클립에 쏠려 있었다. 연속 투구를 쉼 없이 살피며 공략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류현진에게 강했던 골드슈미트의 타격 영상은 계속 돌려보고 있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엘리스의 고민이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다저스 동료들의 격려의 손길도 이어졌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비디오에 빠져 있는 엘리스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면서 애리조나 타자들의 성향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등 엘리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같은 왼손 투수이기에 커쇼의 조언은 엘리스에게 남다를 법했다.
1~2분을 머물던 커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켄리 잰슨이 엘리스의 옆에 다가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로날드 벨리사리오도 엘리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그럴 때마다 엘리스는 가벼운 미소로 응대할 뿐, 노트북 화면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야시엘 푸이그의 스페인어가 라커룸을 들썩이게 하고 맷 켐프의 농담이 옆에서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엘리스는 한결 같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머리를 쥐어뜯기를 반복한 엘리스의 노력 때문일까. 류현진은 이날 8이닝 동안 2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호투했다. 2회부터는 변화구 위주의 패턴으로 바꾼 것도 성공을 거뒀다. 물론 이 호투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는 투수 류현진이다. 하지만 팀 동료들의 노력도 그 사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 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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