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불운이라 할 만하다.
SK 좌완 크리스 세든(30)은 올해 가장 성공한 외국인 투수 중 하나다. 28경기에서 175⅓이닝을 던지며 12승6패 평균자책점 2.93 탈삼진 149개를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점-탈삼진 2위에 다승-투구이닝도 각각 3위-4위에 랭크돼 있다.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정교한 제구와 절묘한 타이밍 싸움으로 연착륙했다. 한국 데뷔 첫 해부터 SK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유독 불펜에서 승리를 날리는 경기가 많았다. 지난 20일 대전 한화전이 대표적이었다. 세든은 6⅓이닝 8피안타 3볼넷 1사구 5탈삼진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했다. 4-0으로 리드한 7회말 1사 1·3루에서 박정배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하지만 박정배가 이대수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이양기에게 3타점 3루타를 맞아 세든은 2실점을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8회말 윤길현이 연속 볼넷으로 1사 2·3루 위기를 자초한 뒤 조기 투입된 마무리 박희수가 이대수에게 좌익선상으로 빠지는 2타점 2루타를 맞고 4-5 역전을 허용, 세든의 시즌 13승도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날 승리투수가 됐다면 쉐인 유먼(롯데), 배영수(삼성)와 함께 다승 공동 1위가 될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문제는 이런 경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날 한화전 포함 불펜에서 세든의 승리를 날린 게 무려 5번이나 된다. 지난 4월14일 마산 NC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막고 3-2 리드를 지켰으나 마무리 송은범이 블론세이브를 저지른 바람에 승리가 좌절된 것부터 시작이었다. 5월15일 광주 KIA전에서는 5이닝 1실점으로 막았으나 3-1 리드에서 전유수가 블론을 범하며 승리를 날렸다.
이어 6월9일 문학 한화전에서도 7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4-0 넉넉한 리드에서 마운드를 내려갔으나 불펜이 동점을 내주며 승리가 물거품됐다. 당시 블론세이브도 마무리 박희수가 저지른 것이었다. 7월27일 사직 롯데전에서도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뒤 3-1에서 마운드를 넘겼으나 박정배가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올해 선발투수 중 불펜에서 선발승 요건을 5번이나 날린 케이스는 세든 외에도 레다메스 리즈(LG) 에릭 해커(NC) 송승준(롯데) 노경은(두산) 김영민(넥센)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세든은 가장 안정감 있는 피칭을 펼치는 투수라는 점에서 불운이 더욱 두드러진다. 퀄리티 스타트를 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도 8경기나 된다.
이 같은 불운에도 세든은 12승을 거두며 다승 1위 그룹에 1승 뒤진 3위에 올라있다. 5번의 블론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다승 1위가 될 수 있었다. 불운에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제 몫을 한다는 점에서 세든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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