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사에 주자가 루를 밟지 않고 그냥 지나쳐 아웃된 사례는 총 28번. 그 중 대부분은 주자가 다음 루를 향해 진루하는 과정에서 중간지점이나 최종 도착지점인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아 아웃된 순방향 공과이지만, 주자가 거꾸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루를 건너 뛰어 아웃된 일명 ‘역주행’ 또는 ‘역방향’ 공과도 3차례 포함되어 있는 숫자다.
따라서 지난 9월 17일 SK와 LG전(문학구장)에서 귀루 중 공과사유로 통산 28번째로 어필아웃 되고만 정상호(SK)의 경우는 역대통산 4번째에 해당하는 역주공과 아웃이었다.
이날 2루주자였던 정상호는 SK의 5회말 공격 1사 1, 2루 상황에서 후속타자 김성현의 잘 맞은 우익수 플라이 타구를 안타성 타구로 오인, 내쳐 뛰어 3루를 지났다가 타구가 LG 우익수 이진영에게 직접 잡히자 부리나케 2루로 귀루하려 한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이미 밟고 지나온 3루를 버려두고 2루로 바로 귀환해 버린 것은 규칙을 거스르는 주루플레이였기 때문이다. 야구규칙 7.02에는 주자가 역주 중이라 하더라도 볼데드 상태가 아니면 모든 루를 역순으로 닿을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정상호가 2루주자였지만 3루를 도는 순간, 그의 주루상 신분은 3루주자로 간주되어 본래 있던 2루로 돌아가기 위해선 다시 3루부터 역순으로 밟을 의무가 있었다라는 것이다. 이를 눈여겨보고 있다 어필을 시도한 LG 3루수 정성훈의 눈썰미가 빼어났다.
만일 정상호가 3루를 밟았지만 아직 홈쪽으로 두 발 모두 떨어지지 않았다면? 3루를 밟고 있는 그 상태에서 바로 2루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3차례 기록되어 있는 역주 중의 주자 공과아웃 상황을 돌아보면, 최초의 역주공과 아웃은 2006년 이종범(KIA)이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종범은 5월 2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 1루주자로 나가 있다가 이용규의 좌익수 플라이때 2루를 지나 3루로 뛰어가다 타구가 잡히자 1루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중간지점인 2루를 밟지 않고 지나쳐 아웃된 일이다.
두 번째는 2007년 조동화(SK)가 기록했다. 7월 14일 문학구장 두산전에서 1루주자였던 조동화는 1회말 이진영의 좌익수쪽 파울플라이 타구때 2루를 지나 3루로 달려가다 급히 귀환하는 과정에서 2루를 밟지 않아 두산 2루수에게 어필아웃되고 말았다. 우연의 일치지만 이종범과 조동화를 공과 죄목으로 나란히 엮은 두산의 2루수는 고영민.
그리고 이번 정상호 이전 가장 최근 일어났던 역주공과 아웃은 2009년 6월 23일 현 넥센의 장기영(히어로즈)이 당한 것으로 남아있다.
당시 2루주자였던 장기영은 잠실 LG전에서 8회초 송지만의 우익수쪽 안타성 타구에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리다 타구가 외야수에 잡히자 귀루하는 과정에서 3루를 밟지 않아 3루수에게 어필아웃되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역시 공교롭게도 이번 정상호 공과아웃 사건에 공을 세운 LG 정성훈의 이름이 어필아웃을 요구한 3루수로 또 한번 올라있다.
한편 정상호의 역주공과 아웃이 성립되기 전, 타구를 직접 포구한 LG 우익수 이진영의 1루주자를 잡기 위한 1루송구가 1루수의 키를 넘어 포수 뒤쪽 그물망까지 굴러가는 일도 함께 벌어졌는데, 만일 이진영의 송구가 볼데드 지역인 덕아웃이나 그물망 뒤쪽으로 들어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비측에서는 새로운 플레이를 시작하기 위한 공을 건네 받고 난 후, 바로 3루수나 기타 야수를 통해 정상호의 3루공과를 지적하면 아웃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어필을 위해 던진 공이 불운하게도 3루쪽 덕아웃으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면? 이때는 새로운 공을 받고 재차 어필을 할 수 없다. 수비측에 2번의 기회를 거듭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취지에서다. 규칙 7.10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같은 루에서 한 주자에 대해 연속으로 어필할 수 없다. 수비팀이 첫 번째 어필을 잘못했다면 같은 루에서 같은 주자에 대해 두 번째 어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어필을 잘못했다는 것은 수비측이 어필하려고 던진 공이 볼데드 지역으로 들어간 것을 말함.’
즉 정상호는 수비측의 실수로 공과에도 무사히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상호가 역주공과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또 한가지가 열려있다. 3루를 밟지 않고 2루를 향했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 밟고 오면 된다.
단, 여기에는 제약이 하나 있다. 공이 볼 인플레이 상황 중이라면 어느 시점이든 돌아가서 3루를 밟고 와도 무방하겠지만, 볼데드 상황이라면 정상호는 2루로 복귀하기 이전에 3루를 밟고 와야 한다.
역시 공과 관련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루를 밟지 않은 주자가, 볼데드 상태에서 루를 공과하고 다음 루에 도달하고 나면 미스한 루를 다시 밟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라고.
이번에는 주자의 공과사실에 대한 어필방법 문제 하나를 풀어보도록 하자.
정상호의 이날 공과 어필아웃은 LG 3루수 정성훈이 정상호의 몸에 태그하는 대신, 3루를 찍고 어필한 즉시 이루어진 것이지만, 만약 3루를 지났던 2루주자 정상호가 귀루 중에 아직 3루를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LG 3루수 정성훈이 3루를 밟고 어필해도 정상호는 아웃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때의 3루는 정상호가 공과한 루가 아니라, 밟고 지나갈 의무가 있는 정상적인 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웃을 이끌어 내려면 정상호의 몸이나, 진루의 기점이 되었던 2루에 대고 어필을 해야 아웃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처럼 야구의 주루플레이도 얽히고 설키면 무척 복잡해진다. 지나면 쉽지만 혼돈과 맞닥뜨리는 순간에는 당황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 안을 잘 살펴보면 원리와 순리가 들어있다. 그 끈을 잡고 있어야만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어쨌거나 야구규칙을 이리저리 따져보는 사람에겐 규칙적으로 실수한 선수를 뭐라 하기 이전, 그들이 아프게 매맞고 배운 교훈을 무상(?)으로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일 수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