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 사극 ‘구암 허준’이 오는 27일 6개월여의 대장정을 마치고 안방극장을 떠난다. 아버지 고 김무생에 이어 허준을 연기하며 혼신의 힘을 썼던 김주혁(40)은 사극, 게다가 일주일에 5번 방영되는 일일 사극에 임하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무신’ 때 정말 힘들어서 당분간은 사극을 하지 않으려고 했죠. 허준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좋은 작품이 왔어도 안 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연기하신 허준이기에 이 드라마는 꼭 해야한다고 생각했죠.”
‘구암 허준’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허준을 연기한 김주혁은 초반부터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강행군을 이어왔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함께 고생하는 선후배들과 스태프 덕에 버티고 또 버텼다.

“작품에서 주인공을 하는 배우는 연기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위축되니까요. 힘들더라도 제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대선배님들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그동안은 깍듯이 예의를 지켜서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게 있으셨을 거예요. 선배들에게 예의를 지키면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죠.”
‘구암 허준’은 ‘올인’, ‘아이리스’, ‘빛과 그림자’ 등을 집필한 최완규 작가가 1999년 ‘허준’에 이어 또 한번 펜을 들었다. 최 작가는 촬영 일정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빡빡하기로 유명했던 ‘구암 허준’을 이끌며, 방송가에 흔한 ‘쪽대본’을 배우들에게 안기지는 않았다.
“만약에 우리 드라마가 쪽대본 체제였다면 정말 결방됐을 거예요. 대본이 스튜디오 촬영 하루 전날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쪽대본은 아니었어요. 전 지금까지 운이 좋게도 쪽대본 드라마는 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쪽대본은 작품을 위해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쪽대본은 아쉬울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배우가 작품에 대해 숙지를 하고 연기하는 것과 다음 이야기를 몰라서 그냥 연기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작품에 대해 많이 알고 향후 전개에 대해 예상은 하고 있어야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쪽대본을 받으면 배우들도 어쩔 수 없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김주혁은 이번 드라마에서 엄청난 대사량에 시달렸다. 드라마가 허준을 내세우는 이야기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노련한 배우 김주혁조차도 대사를 외우는 게 부담감이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너무 일정이 빡빡하고 해야할 연기는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솔직히 연기자로서 속이 상하죠. 일일 사극은 구조적으로 늘 힘을 가득 실어서 연기를 할 수는 없더라고요. 조금 흘려서 연기를 하고 나면 찝찝하고 많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구암 허준’은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의 일대기와 숭고한 의학 정신을 다뤘다. 허준의 성공 과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감동적이었고 안방극장에 교훈을 남겼다. 때문에 자극적인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의 착한 드라마였다.
“우리 드라마는 건전했기 때문에 보는 내내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이제는 자극적인 이야기에 많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가볍게 웃거나, 선정적인 이야기에 아무래도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서 연기하는 배우로서 고민이 많아요. 과거 드라마와 달리 자극적인 이야기가 많으니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 있죠.”
‘구암 허준’은 초반 고전했던 것과 달리 중반 이후 10% 초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 방영 시간으로 익숙하지 않은 오후 9시대에 방송되며 선전했다는 평가와 시청률 보증수표 허준 드라마 시청률로서는 낮다는 평가로 엇갈리고 있다.
“드라마 방영 시간대로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잖아요.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성적이라고 생각해요. 뉴스를 보지 않고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청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우리 드라마가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주혁은 최근 ‘구암 허준’ 마지막 촬영을 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막상 끝나고 나니 떠오르지 않는다고 속상해 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그냥 쉬었어요. 일단 올해는 쉬려고요. 운동도 열심히 해서 체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쉬면서 몸관리 하고 다음 작품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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