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친정팀에서 크지 못한 미완의 유망주로 이적해왔을 때 당시 감독은 4번 타자 중책을 주면서도 ‘부담 갖지 말고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휘두르고 뛰어 놀아라’라고 주문했다. 그 4번 타자는 마음껏 뛰어놀며 자신의 위력을 리그에 마음껏 뽐냈다. 그와 함께 그가 뛰어놀던 팀이라는 앞마당도 점차 커졌다. 이제는 리그의 지배자가 된 넥센 히어로즈 4번 타자 박병호(27)는 폭풍성장의 좋은 예시가 되었다.
박병호는 29일 목동 두산전에 팀의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 1회 선제 결승 투런에 이어 3회 중월 쐐기 스리런으로 연타석포를 날린 뒤 그것도 모자라 7회 좌월 투런으로 3홈런 7타점 원맨쇼를 펼쳤다. 박병호의 1경기 3홈런 작렬은 올 시즌 처음이자 지난해 8월1일 문학 SK전 3홈런 4타점에 이어 데뷔 후 두 번째다. 박병호의 시즌 성적은 3할2푼2리 36홈런 112타점(29일 현재)이다.
지난 2011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박병호는 야구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미완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다.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포로 주목을 받았고 청소년대표팀에도 승선하며 2005년 LG의 1차 지명 신인으로 입단했던 박병호. 순혈 파워히터였고 2007~2008년 상무에서도 바람직하게 자라났으나 LG라는 땅에서 박병호는 제대로 크지 못했다.

본인이 변화구 대처에 취약함을 보이기도 했으나 팀 성적도 중요했던 LG는 박병호를 주전 중심타자로 꾸준히 내세울 만큼 여유있는 팀이 아니었다. 게다가 박병호의 타격에 대해서는 팀에서도 ‘이렇게 쳐야 한다’, ‘저렇게 쳐야 한다’라며 조언을 건네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모진 성품이 아닌 박병호는 이 이야기를 모두 귀담아듣다가 결국 제 것을 만들지 못하고 2군에 익숙해졌다.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지난 2011년 7월31일 넥센과의 2-2 트레이드. 당시 LG는 우완 셋업맨 송신영과 젊은 선발 김성현을 받고 선발 심수창과 함께 박병호를 주었다.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박병호는 LG에서 크지 못하고 넥센으로 가는 미완의 유망주 그 이미지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최하위를 달리던 넥센은 이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병호에게 4번 타자 중책을 주었다. 그리고 당시 김시진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네 타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쳐라”라고 주문했을 뿐이었다.
얼핏 보면 방목이었으나 LG에서 분재가 되어버릴 뻔 하며 말 못할 마음고생도 심했던 박병호를 위한 배려였다. 마음껏 치라는 팀의 주문에 박병호는 이적 첫 해 66경기 2할5푼4리 13홈런 31타점으로 가능성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해 박병호는 팀의 붙박이 4번 타자로 전 경기(133경기)에 출장, 2할9푼 31홈런 105타점으로 리그 굴지의 거포가 되며 홈런-타점왕이 된 데 이어 리그 MVP가 되었다. 1년 반 만에 ‘미완’과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뗀 박병호다.
그의 진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롯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에 대해 “이제는 나쁜 공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좋은 선구안까지 갖췄다. 이 정도면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로 봐도 무방하지 않나”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미 박병호는 올 시즌 3할-30홈런-100타점 기록을 모두 달성하며 정확성까지 완벽하게 보완한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되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팀이 박병호와 함께 쑥쑥 컸다는 점이다. 박병호 이적 당시 최하위였고 그대로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넥센은 지난해 6위에 그쳤으나 시즌 중반까지 돌풍을 일으켰던 다크호스였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은 넥센은 올 시즌 그 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염경엽 신임 감독은 다양한 작전 구사를 통해 선수단의 역량을 깨웠고 박병호는 물론 강정호, 김민성, 이택근 등 넥센 야수진은 화력을 과시했다. 브랜든 나이트-앤디 밴 헤켄 두 원투펀치가 지난해만큼의 위력은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쾌거를 만든 넥센이다.
그가 굴지의 4번 타자로 크는 데는 동료들의 배려도 컸다. 박병호는 이적 당시부터 지금까지 선후배 동료들에 대해 “꾸준히 4번 타자로 출장 기회를 얻는 데 대해 선배들께서 배려하시며 조언해주셨고 후배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항상 감사한다”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했다. LG 시절 거포로서 잠재력은 꾸준히 인정받았으나 제대로 놀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갖지 못했던 박병호. 그와 함께 팀도 폭풍성장했다는 점은 ‘목동의 가을야구’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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