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깬 10승’ 유희관, 팀 좌완 수맥 끊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9.30 21: 57

“희관이가 선발이라. 글쎄. 제구는 좋은데 공이 빠르지 않아서 괜찮을 지 모르겠다. 훈련은 시키지만 과연 적합할 지 모르겠다”.
지난 2월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은 일본 미야자키 전지훈련 말엽 롱릴리프이자 선발 후보군으로도 훈련하던 좌완 유희관(27)에 대해 풀타임 선발로서 활용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좋은 제구력을 갖췄고 상무 시절 확실한 기량 성장세를 보여줬으나 평균 130km대 초반에 그치는 직구 구속이 1군 선발로 쓰기에 적절할 지 의문부호를 붙였다. 그 유희관이 25년 만의 베어스 한 시즌 10승 투수가 되었다.
유희관은 30일 잠실 LG전 선발로 등판해 5이닝 동안 7피안타(탈삼진 2개, 사사구 1개) 2실점으로 5-2로 앞선 6회말 무사 1,2루서 홍상삼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물러났다. 뒤를 이은 홍상삼이 승계주자 실점을 막으며 선배의 호투를 지켰고 쐐기점까지 나오며 유희관의 시즌 10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신인왕 경쟁자인 NC 이재학에 앞서 10승 고지를 선점한, 신인왕 경쟁에도 파도를 몰아칠 수 있는 뜻깊은 승리다. 더불어 유희관은 전신 OB 시절이던 지난 1988년 윤석환 전 투수코치가 13승을 올린 이후 25년 만에 베어스 좌완으로는 첫 한 시즌 10승을 수확했다. 1990년 구동우(9승) 현 NC 코치, 2001년 이혜천(9승)이 고지에 근접했으나 결국 등정에는 실패했다. 외국인 투수까지 포함해도 지난 2004년 17승으로 공동 다승왕이 된 게리 레스 이후 9년 만이다.
장충고-중앙대를 거쳐 2009년 2차 6라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유희관은 이미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에서는 2군 최고 좌완으로 꼽혔던 투수. 그러나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볼 스피드였다. 대학 시절 최고 좌완으로 활약하면서도 최고 구속이 132~3km에 불과해 6라운드까지 밀렸던 유희관이다. 상무에서 2년 간 에이스로 활약하며 지난해 2.40의 평균자책점으로 장원준(롯데, 당시 경찰청, 2.39)에 이어 북부리그 2위에 올랐으나 그에 대한 팀의 평가는 언제나 평가절하되었다. 공 스피드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감독도 유희관의 합류 후 시즌 개막 전까지 “확실히 1군 투수로 내세우기 충분한 기량을 갖췄다”라면서도 “릴리프로는 기용할 수 있겠지만 볼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아서 선발로 긴 이닝은 어려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WBC에 참가한 노경은의 과부하를 위한 보험, 이용찬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한 선발 결원으로 인해 선발 훈련은 치렀으나 확실히 선발 보직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미검증 투수라는 이유도 있었으나 일단 느린 직구 구속이 감점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즌 개막 후 팀을 살린 투수 중 한 명은 바로 유희관이었다. 상무 제대 동기이자 1년 선배 오현택이 중간계투로 맹활약했다면 유희관은 계투로 출발해 5월4일 잠실 LG전 깜짝 선발로 나서 5⅔이닝 무실점 승리를 거둔 뒤 어느새 선발 보직까지 꿰찼다. 자신의 느린 직구처럼 스멀스멀 전반기 평균자책점 2위(2.33)까지 올랐고 신인왕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비록 후반기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이재학에 비해 점수를 깎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뉴월 투수난에서도 유희관은 꿋꿋했다.
특히 두산은 국내 좌완 기근 현상에 목 말라 타 들어가던 팀이다. 1998년 데뷔 이래 2008년까지 마당쇠 좌완으로 공헌도가 컸던 이혜천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기대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 아쉬움을 샀다. 진야곱(경찰청), 장민익(공익근무), 정대현 등 유망주들은 저마다 부상과 제구난 등에 허덕였다. 금민철(넥센, 공익근무)에 현금 10억원까지 얹어 데려온 이현승은 2년 간 팔꿈치-어깨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뒤 상무 입대했다. 지난 25일 제대했으나 4월 받은 팔꿈치 수술로 인해 다음 시즌 후반기나 되어야 복귀 예정이다.
그만큼 두산은 왼손 투수 텃밭 아래 양쯔강급 수맥이 흐르던 팀이다. 그 수맥을 끊은 것은 파이어볼러도 아니고 ‘과연 공이 느려 선발로 쓸 수 있을까’라는 선입견이 가득했던 ‘느림의 미학’ 유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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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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