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보직을 바꾼다는 것은 민감한 부분이다. 지금껏 해왔던 패턴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팀의 에이스급 투수라면 그 도박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광현(25, SK)에 대한 시선이 불안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만수 SK 감독은 29일 우천으로 연기된 마산 NC전을 앞두고 내년 팀 구상에 대한 밑그림을 살짝 드러냈다. 올 시즌 SK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당연히 내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한 팀이다. 이 감독의 시선은 불펜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불안한 불펜을 정비하기 위해 ‘김광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닌 구상 단계지만 그 성사 여부를 놓고 비상한 관심이 몰리고 있다.
‘벌떼야구’로 불리던 SK는 올 시즌 주축 선수들의 이탈 및 부상으로 불펜 전력이 크게 약해졌다. 정대현 이승호가 차례로 팀을 떠난 것에 이어 지난해 마무리였던 정우람이 입대하며 뒷문에 구멍이 생겼다. 여기에 기대를 모았던 엄정욱은 부상 여파로 한 경기에도 뛰지 못했고 전병두는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 박정배 윤길현도 정상에 가까운 컨디션을 찾은 것은 시즌 중반의 일이었다. 전체적인 불펜 구상이 꼬였고 힘겨운 양상으로 흘렀다.

내년에도 특별한 보강 요소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엄정욱 전병두는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고 채병룡의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 감독도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광현의 마무리 투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이 마무리로 자리 잡으면 박희수를 다시 중간계투진의 필승카드로 돌릴 수 있다. 박정배 윤길현 진해수 박희수가 버티는 중간이라면 좌우 구색도 어느 정도 잘 맞는다. 불펜 전력이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의 달콤함 이면에 있는 위험요소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우선 김광현의 어깨 상태가 변수다. 지난 2년간 왼 어깨 재활에 매달렸던 김광현은 올 시즌 10승을 거두며 이제 막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단계다. 하지만 어깨 상태가 아주 깔끔할 수는 없다. 실제 김광현은 시즌 막판 어깨에 불편함을 느끼며 선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른 상황이다. 비교적 체계적인 어깨 관리가 가능한 선발에 비해 불펜은 매일 대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어깨 상태를 확신할 수 없는 김광현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선발로 나서면 한 시즌에 10승이 보장된 투수를 마무리로 돌리는 것에 대한 손익계산도 논란이다. 봉중근(LG)의 사례도 도마 위에 오른다. LG의 수호신으로 자리하며 올 시즌 팀의 호성적에 크게 기여한 봉중근이었지만 마무리 전업 첫 해였던 지난해에는 그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팀 전력이 약한 상황에서는 ‘든든한 마무리’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였다. 여기에 SK는 박희수라는 좋은 대안이 있다는 점에서 LG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김광현의 마무리 투입이 장기적인 팀 구상과 부합하느냐도 논란의 대상이다. SK는 박희수라는 뛰어난 마무리가 있다. 엄정욱 전병두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후년에는 정우람 또한 복귀할 수 있다. 당장 정우람만 돌아와도 굳이 김광현을 마무리로 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1년 마무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에이스의 보직을 두 번이나 바꾸면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고 가며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윤석민(KIA)의 사례를 고려할 만하다.
김광현 없는 선발진이 탄탄한 모습을 보일지도 미지수다. 이 감독은 외국인 선수 2명, 그리고 우완 에이스인 윤희상과 올 시즌 가능성을 보인 백인식을 중심으로 선발진을 꾸려나가겠다는 생각이지만 올 시즌 내내 5선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SK였다. 또 5선발, 혹은 4·5선발을 찾는 데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광현 마무리 기용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확실한 대안을 먼저 찾을 필요가 있는 이유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