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들어서 모든 경기에 출루하고 있다. 필요할 때는 희생번트도 시도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에 아웃타이밍에서 상대 수비 중계가 지체되는 것을 편승해 태그를 피하는 훅 슬라이딩으로 역전 결승 주자가 되었다. 후반기 3할3푼1리의 맹타를 보여주고 있는 홍성흔(36, 두산 베어스)은 잘 데려온 프리에이전트(FA) 복귀 이적생이다.
홍성흔은 7-6 역전승으로 끝난 4일 광주 KIA전서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만회점이 필요했던 2회 초구 유격수 땅볼은 아쉬웠으나 9회초 5-6을 만드는 1타점 2루 강습 안타에 이어 정수빈의 좌전 안타 때 좌익수 이동훈-3루수 박기남의 중계 사이 홈까지 내달아 7-6 역전 득점을 올렸다. 8회말까지 4-6으로 패색이 짙어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할 뻔 했던 두산은 9회 3득점으로 2위 탈환 가능성을 다시 살렸다.
1999시즌 두산에서 데뷔한 뒤 2008시즌까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다 첫 번째 FA 자격 취득 당시 롯데로 이적했던 홍성흔은 4년 간 통산 3할3푼 59홈런 32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파괴력을 끌어올렸다. 자격 재취득 후 롯데의 3년 계약 제시에 4년 계약을 바라던 홍성흔은 활발한 라커룸 리더를 필요로 하던 데뷔팀 두산의 러브콜에 따라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후 홍성흔은 팬들의 비난 공세에 자유롭지 못했다. 두 번의 이적 자체가 팬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줬고 인터뷰 자체에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명타자 포지션에 대한 중첩 현상을 야기했다는 점까지 겹치며 홍성흔은 전반기 동안 무수한 비난 포탄을 맞아야 했다. 10년도 훨씬 넘게 지켰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선수단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때 ‘해보자’라며 파이팅을 외치는 것은 팬들에게 보이지 않는 만큼 비난 공세가 그리 수그러들지도 않았다.
그 사이 홍성흔은 전반기 74경기 2할7푼8리 8홈런 46타점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선수 본인이나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더욱이 수비를 나서지 않는 지명타자라는 점에서 홍성흔은 더 큰 비난 공세를 받았다. “필요할 때는 희생번트라도 대고 나도 뛰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뛰겠다.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지금 두산은 주자들이 활발히 뛰며 찬스를 만들어야 사는 팀이다. 그 팀컬러를 나도 살릴 수 있도록 돕겠다”라며 후반기를 시작한 홍성흔은 확실히 공헌 중이다.
후반기 홍성흔의 성적은 52경기 3할3푼1리 6홈런 25타점. 특히 전반기 74경기서 30개의 사사구를 얻었던 데 반해 지금은 후반기 52경기서 33개의 사사구를 얻어냈다. 전반기 말엽이던 7월17일 잠실 NC전부터 이어진 출루 행진은 어느새 53경기 연속 출루로 이어졌다. 53경기 연속 출루 기록은 단일시즌을 기준으로 2003년 심정수(당시 현대)의 기록과 함께 역대 공동 3위다. 경기 전 훈련에서 선수들의 기를 북돋는 것은 물론 경기 중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때는 평범한 땅볼에도 열심히 뛰고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한다.
그가 가세한 후 두산 팀 분위기는 확실히 다시 밝아졌다. 홍성흔이 없던 4년 동안에도 두산에는 좋은 팀 리더들이 많았으나 연패 등으로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때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키는 모습은 다소 아쉬웠던 것이 사실. 돌아온 홍성흔은 적시타와 연속 출루로 후속 타자들에게 찬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분위기가 어두워졌을 때 자신이 힘들더라도 몇 번 더 파이팅을 외치는 팀 리더다. 재이적 첫 시즌 홍성흔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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