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령타격왕이 된 이병규(39, LG 트윈스 9번)는 컨택 능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때문에 ‘배드볼 히터’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으나 존을 완전히 빠진 공을 안타로 연결하는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 그 이병규에게 슬로커브를 조공하며 두산 베어스는 4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
5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와 두산의 2013 페넌트레이스 최종전. 두산은 2회 홍성흔-이원석의 연속타자 솔로포와 5회까지 상대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선발 노경은의 호투 덕택에 2-0 리드를 잡아갔다. 노경은의 투구는 안정적이었고 타선도 일단 두 개의 홈런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승부처는 6회말. 노경은이 윤요섭에게 중견수 방면 안타, 박용택에게 2루수 강습 안타를 내주며 무사 1,3루 위기에 몰렸고 두산은 주저 없이 노경은을 유희관으로 교체했다. 유희관의 계투 투입은 이미 김진욱 감독이 시사했다. 그와 함께 두산은 노경은을 잘 리드하던 포수 최재훈을 양의지로 교체했다.

이진영의 3루수 파울 플라이로 1아웃을 쌓은 두산. 이후 이병규(7번)의 우전 안타로 2-1 한 점 차로 쫓겼다. 정성훈의 3루 땅볼로 2사 1,3루가 된 상황. 타석에는 8년 만의 타격왕좌 착석과 팀 플레이오프 직행을 노리는 적토마 이병규(9번)가 들어섰다. 그리고 첫 두 개의 공이 볼이 되며 유희관에게 불리한 카운트가 되었다. 두산 배터리의 위기 관리능력이 중요했던 순간이다.
여기서 유희관의 3구 째는 슬로커브였다. 유희관은 직구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 대신 스피드 차가 큰 커브로 타이밍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스타일의 투수. 그러나 이것이 적토마 타석에서 나온 공이었다는 것은 위험했다. 커브를 낮은 유인구로 간다는 자체는 불리한 볼카운트 상 만루작전의 고육책이었고 이는 결정구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병규는 이미 시즌 중 넥센 송신영의 70km대 초슬로커브를 때려내 안타를 만드는 등 상대 투수의 타이밍 싸움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4일)까지 이병규의 올 시즌 총 삼진은 39개로 타격 10걸 중 가장 적었다. 골라내지 않더라도 때려내는 감각은 아직도 국내 굴지의 타자임을 보여준 이병규에게 슬로커브가 나왔다. 투수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었더라면 결과론적으로도 과정론적으로도 이는 포수의 잘못으로 돌아갈 만 했다.
그리고 이병규는 이를 우익수 방면 2타점 역전 2루타로 연결하며 두산에게 아픔을 줬다. 이병규는 제대로 된 슬로커브 공략으로 자신의 컨택 능력이 여전히 뛰어남을 보여주며 두산 배터리의 안일했던 커브 구종 선택을 완벽한 실패로 돌려놓았다. 결국 두산은 2-5로 패하며 잡을 수 있던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헌납하고 4위로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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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