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맵고 강렬했던 고춧가루가 있었을까. 최하위 한화가 역대 최강의 고춧가루 부대로 2013년 대미를 장식했다.
한화는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지난 5일 대전 넥센전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장식했다. 반면 최하위 한화에 덜미를 잡힌 넥센은 자력으로 2위를 확정지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채 3위로 밀려났고, LG가 잠실에서 두산을 꺾고 2위로 올라서는 대역전 드마라를 연출했다.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프로의 세계였다. 이날 경기 전 넥센 염경엽 감독이 한화 덕아웃을 찾아 김응룡 감독에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염 감독을 환한 미소로 맞이한 김 감독이었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봐주는 건 없었다. 한화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경기 전 김응룡 감독은 취재진이 얼마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우리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보다"며 슬며시 웃은 뒤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경기다. 당연히 잘해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전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전력으로 안 한 적이 없다. 오늘도 총력전으로 한다. 봐주는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감독의 말대로 한화는 경기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넥센을 압박했다. 선발 데니 바티스타가 8회 1사까지 12개 탈삼진 포함 노히트 피칭으로 위력을 떨쳤고, 6회 정범모의 2타점 적시타로 리드를 잡았다. 김 감독은 8회 1사 1·2루 위기에서 곧바로 마무리 송창식을 투입하며 총력에 총력을 거듭한 끝에 1점차 승리를 거뒀다.
결국 한화는 시즌 마지막 날 2~3위를 결정지으며 캐스팅보트다운 면모를 발휘했다. 9월 이후 1~2위를 달리던 LG에 무려 3승이나 거두며 3위까지 끌어내렸던 한화가 공교롭게도 마지막 날에는 LG의 2위 등극을 도와준 모양새가 됐다. 그야말로 LG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한화가 있어 프로야구 막판이 어느 때보다 흥미로웠다.
이날 한화의 승리를 이끈 바티스타는 "넥센의 상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마지막 경기였고, 이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작년에는 넥센 상대로 류현진이 10이닝을 던지고도 못 이겼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팀이 이겼다. 이것이 바로 야구"라고 의외성을 강조했다.
한화는 이미 9위 최하위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로 역사에 길이 남을 고춧가루 부대가 됐다. 본의 아니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유독 한 사람이 쑥쓰러워 했으니 바로 김응룡 감독이었다. 그는 이날 경기 후 "아 이거 참. 쑥스러워 죽겠네"라고 앓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올해 너무 못해서 팬들에게 죄송하다. 내년에는 좋은 성적으로 잘 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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