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돌들의 활약상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래하고 춤이나 추는 애들이 무슨 연기냐'며 쓴 소리 하던 일도 조만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될지 모른다.
이젠 연기하는 아이돌들을 보면 원래 가수인지, 배우인지 구분도 잘 안갈 지경이다. 영화며 드라마며 줄줄이 캐스팅되는 아이돌들의 면면을 보면 몇 년 전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연기돌이 데뷔하던 초반엔 주로 톱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만 기회가 국한됐다면 요즘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예 아이돌까지도 주요 배역에 캐스팅되는 사례가 늘었다.
JYJ 박유천과 김재중, 동방신기, 빅뱅 탑(최승현), 미쓰에이 수지, 소녀시대 윤아와 수영 그리고 서현, 엠블랙 이준, 에프엑스 설리와 크리스탈, 씨엔블루 정용화와 이종현, 2PM 옥택연과 황찬성, FT아일랜드 이홍기,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과 박형식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정상급 아이돌은 물론 최근엔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들까지도 속속 연기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모습.

이쯤 되니 전업 배우들도 더 이상 무시가 아닌 긴장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캐스팅 단계에서 김수현 송중기 유아인 등 20대부터 조인성 현빈 원빈 강동원 등 30대의 톱 배우들과 함께 거론될 만큼 만만치 않은 필모그래피와 내공을 축적해나가고 있기 때문.
'연기돌'이 갖는 존재가치와 정체성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지난 3일 개막해 성황리에 진행 중인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유독 많은 연기돌들이 발길을 해 뜨거운 이슈를 낳았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의 이준, '동창생'의 탑, '결혼전야'의 옥택연 등이 주연한 작품을 들고 어엿한 배우의 이름으로 영화제에 입성한 것. 이들에 대한 팬덤의 응원이 뜨거웠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연기돌의 남다른 무기와 활약상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선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준과 탑, 옥택연 등은 자신들의 작품으로 연출자와 스태프,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과거 일부 아이돌의 '발연기'를 접하고 대중은 물론이고 그에 앞서 제작자와 연출자, 언론과 평단의 한숨이 컸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과거 제작진이 한류 특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돌을 데려다 썼다면 이젠 작품의 내실을 위해서나 수익 모델, 더 나아가 국위를 선양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나 연기돌의 고른 장점을 후하게 평가한다.
'주군의 태양' 후속작 SBS 새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로 컴백을 앞둔 김은숙 작가는 어제(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왜 아이돌이면 (연기하면) 안 되는 거냐"는 소신을 드러내며 크리스탈, 박형식, 강민혁의 캐스팅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그는 '상속자들' 출연진 중 유난히 아이돌이 많은 것에 대해 "안 믿을 줄 모르겠지만 크리스탈, 박형식, 강민혁 같은 경우 다른 배우들과 같이 오디션을 다 같이 봤다. 그 중에서 그 친구들이 잘 했기 때문에 캐스팅 했다"며 "에너지 넘치는 명수 역할을 박형식이 제일 잘 했고 보나 역을 맡은 크리스탈이 철딱서니 없고 착하고 부잣집 아가씨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연기를 크리스탈만큼 잘하는 연기자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나름 우리는 연기 잘하는 연기자를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돌이라서 뽑혔다는 반응이 있었다. '왜 아이돌이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돌도 일반 연기자들과 똑같이 오디션을 봤는데 좋았던 지점은 연기를 잘했다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기 면에서도 준비된 아이돌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과거엔 다소 수동적이거나 특별한 개념 없이 연기 겸업 흐름을 따라갔다면 지금의 아이돌들은 연습생 때부터 노래나 춤과 동시에 연기 공부와 연습을 함께한다.
발연기란 비아냥거림, 그래서 피해의식에 맘 졸였던 연기돌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충무로와 방송가에서 당당히 배우들만큼 인정받고 대우받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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