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이 비처럼 쏟아지던 LA 다저스 클럽하우스. 인파를 헤치고 한 노인이 클레이튼 커쇼의 앞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디비전시리즈 영웅인 커쇼를 향해 거침없이 걸었고, 그 누구도 가로막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길을 터줬다. 그 노인은 감격스러운 듯 커쇼를 껴안았고, 커쇼 역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노인에게 안겼다. 그 노인은 바로 다저스의 전설, 샌디 쿠팩스(78)였다.
다저스는 8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선발 커쇼는 3일만 쉬고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6이닝을 6탈삼진 2실점(비자책점)으로 틀어막고 팀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2009년 이후 4년만에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8번의 승리를 남겨놓게 됐다.
커쇼로 시작해서 커쇼로 끝난 시리즈였다. 1차전 7이닝 12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던 커쇼는 데뷔 후 처음으로 3일만 쉬고 다시 선발 마운드에 섰다. 이미 수차례 다저스는 리키 놀라스코가 4차전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다저스는 에이스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만약 결과가 나빴으면 강력한 역풍이 불었겠지만 8회 터진 후안 유리베의 역전홈런으로 다저스는 해피엔딩을 맞았다.

커쇼는 경기가 끝난 뒤 "3일만 쉬고 등판하는 건 처음이지만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이런날을 위해서 평소에 운동을 해 온것 아닌가. 겨우 한 달만 전력질주 하면 되니까 큰 문제가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규시즌에서 236이닝을 소화, 전체 메이저리거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커쇼였다.
혹자는 1차전과 4차전에 등판한 커쇼를 두고 쿠팩스와 비교를 한다. 커쇼는 현재 쿠팩스의 가장 완벽한 후계자로 꼽힌다. 다저스의 전설을 넘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충격을 선사했던 쿠팩스는 신의 왼팔(The left arm of God)이라고까지 불린다. 5년 연속 리그 평균자책점 1위, 3관왕 3번, 4년 연속 노히트노런에 1번의 퍼펙트게임 등 숱한 업적을 남겼지만 부상때문에 31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사이영 상 수상은 3번. 커쇼 역시 지금까지 3년 연속 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11년 사이영 상을 받았던 커쇼는 올해도 사실상 예약하고 있다.
쿠팩스의 1965년 월드시리즈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미네소타와의 2차전에 선발로 나서 6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던 쿠팩스는 3일을 쉬고 5차전에 다시 등판, 이번에는 완봉승을 거둔다. 게다가 딱 이틀을 쉬고 최종전인 7차전에도 선발로 나서 또 완봉을 해버린다. 투수 분업화와 선수보호에 대해 확실하게 개념이 잡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괴력이다.
때문에 커쇼와 쿠팩스의 포옹이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쿠팩스는 50년만에 드디어 자신의 뒤를 이을 좌완 후계자를 발견한 것이다. 마치 왕관을 씌워주는 것처럼 쿠팩스는 커쇼를 한동안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고, 커쇼도 이제는 왜소한 노인이 된 쿠팩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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