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한국 자동차업계에는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인사로 인해 잔잔한 파장이 일었다. 지난 2005년부터 폭스바겐코리아를 이끌며 폭스바겐 브랜드를 한국시장에 안착시킨 ‘작은 거인’ 박동훈 사장이 르노삼성자동차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인사였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폭스바겐은 지난 9월 BMW를 누르고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이런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동훈 사장의 존재가 있었고 그 결실을 거둬야 할 시기에 회사를 옮긴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들이 나돌았다.
업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르노삼성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 주인공이 새 회사에서 한 달여를 보낸 1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모임의 명칭은 그저 ‘르노 삼성 박동훈 부사장과의 저녁 식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무려 7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례적이었다.

박동훈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자리를 옮긴 이유와 그 동안 자신이 파악한 르노삼성의 현황, 그리고 르노삼성이 걸어야 할 길을 제시했다.
▲도전
박동훈 부사장이 르노삼성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공식-비공식적인 이유는 ‘도전’이었다. 박동훈 부사장은 “먼저 브랜드(폭스바겐코리아)에서는 내가 할 만큼 다했다. 더 이상 할게 없었다. 도전의 목적이 성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도전의 목적은 또 다른 도전’이라는 글을 최근 읽었다.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이직의 이유를 설명했다.
르노삼성에서 박동훈 부사장이 이루고자 하는 꿈도 내비쳤다. 한국 자동차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맞짱’을 뜰 수 있는 기업은 르노삼성 밖에 없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면서 한때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2위까지 갔던 르노삼성의 옛 위용을 끄집어냈다.
▲진단
르노삼성에서 한 달여를 지낸 박동훈 부사장은 “회사를 옮기고 나서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단 하루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 동안 수입차에만 몸담고 있다가 국산차로 왔기 때문에 많이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보다 다른 점이 많지 않더라.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은 차를 많이 파는 일이고, 마케팅을 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 다른 점이 없었다”고 첫 한 달을 되돌아봤다.
그 한 달 동안 박 부사장은 자신의 시각으로 르노삼성을 진단했다. 옛 명성을 되찾을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는 지 면밀히 판단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전 직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발로 뛰어야 할 거리가 많아졌다는 점”이라고 서두를 연 박 부사장은 “르노삼성이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잠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구성원들이 그 장점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180군데 대리점을 발로 뛰어 다니면서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 기죽어 있는 그들에게 기를 다시 불어 넣는 일들을 가장 먼저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부사장이 하고자 하는 일은 분명했다. 르노삼성자동차가 갖고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고 소속원들로 하여금 잠시 잊고 지냈던 자긍심을 ‘회생’시키고 싶어했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박 부사장이 알리고 싶었던 요지도 바로 그 점이었다.
▲현황
그렇다면 박 부사장은 현 시점 르노삼성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박 부사장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구성원들이 떠났지만 그 조직은 그대로 살아 있더라. 어려운 시기를 르노삼성 직원들이 합심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이 회사는 분명히 발전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고 판단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12년간 고객 만족도 1위를 한 회사가 있느냐? 우리가 가진 장점이 바로 그런 것인데 기죽을 일이 뭐 있느냐. 기흥연구소를 가 봤다. 1500명 연구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 지역 디자인 허브가 돼 있다. 여기서 디자인 된 차가 르노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 세계로 팔릴 날을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꼈다.”
▲미래
르노삼성이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나면 그 다음은 미래 전략이다. 박 부사장이 세운 르노삼성의 미래 전략은 디젤차와 전기차였다.
박 부사장은 “지난 모터쇼에서 인기를 끌었던 QM3가 연말께 디젤로 출시 된다. 이렇게 되면 르노삼성이 디젤 쪽에도 한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승용차도 디젤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M3로 디젤 시장을 개척하겠다. 디젤에 대한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디젤 라인업 넓히자는 얘기를 회사에서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전기차였다. “전기차는 르노삼성이 갖고 있는 선견지명과 기술력의 극단적인 예다. 올해를 전기차 상용화의 원년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타사의 어떤 차보다 SM3 전기차가 갖고 있는 기술력이 뛰어나다. 제주도에서 SM3 전기차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을 보고 르노삼성은 매우 고무적인 상태다”라고 했다.
기존의 SM3에서 SM7으로 이어지는 가솔린 세단에 QM3 디젤, SM3 전기차로 라인업을 다양화 해 트렌드에 대응하고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박 부사장의 미래 전략은 시기적으로도 르노삼성자동차가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는 시점과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르노삼성은 최근들어 SM5 TCE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판매고 올라가기 시작해 마켓셰어 5% 돌파했고 꼴찌도 벗어났다.
박동훈 부사장은 “르노삼성은 호감도와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많은데 지난 2, 3년간 회사가 어려운 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이 브랜드가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것 같다. 르노삼성은 분명히 그 시기는 벗어나고 있다. 어려움에서 더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 회사에 왔다”며 “르노삼성은 ‘고객을 위한 차’라는 모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해 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00c@osen.co.kr
기자간담회에서 르노삼성자동차의 현재와 미래를 밝히고 있는 박동훈 부사장.